폐막을 이틀 앞둔 리우 올림픽에서도 14일 동안 육상·수영·역도 등 다양한 종목에서 세계신기록 행진이 이어졌다. 15일 육상 남자 400m 결승전에서 웨이드 반 니커크(남아공)는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마이클 존슨(미국)이 수립한 세계기록보다 0.15초 빠른 43초03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1912년 찰스 리드패스가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기록한 48초2를 약 100년 만에 5초나 앞당긴 것이다.
올림픽 챔피언들 체형·기술의 진화
갈수록 더 많은 국가가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과거에 비해 선수 후보군이 훨씬 커진 것도 뛰어난 기록을 배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한 국가 수는 14개, 선수는 241명에 불과했다. 선수 1명을 내보낸 칠레를 제외하면 모두 서구권 국가였다. 리우 올림픽엔 5개 대륙에서 207개국, 1만1551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참가 국가가 늘어날수록 기록도 좋아졌다. 1950년대까지 식민지였다가 하나둘씩 독립해 올림픽에 참가한 아프리카 국가 선수들은 육상 전 종목의 기록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특히 육상에 적합한 체형을 지닌 케냐 선수들은 56년 멜버른 대회에서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이래 달리기·마라톤 등의 종목에서 총 25회나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과거엔 운동 선수들이 생계형 직업을 따로 갖고 운동을 부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48년 런던 올림픽 여자 투포환과 원반던지기에서 금메달을 딴 미슐랭 오스터마이어(프랑스)의 본업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하루 다섯 시간 피아노를 연습하고 운동에는 일주일에 다섯 시간만 투자했다. 50년 27세의 나이로 은퇴한 그의 운동 경력은 불과 10여 년에 불과했다. 시장경제가 발달하고 기업들이 스포츠 분야를 후원하면서 훈련에만 매진하는 전업 선수들이 등장한 것은 50년대 무렵부터다. 리우 올림픽 여자 투포환 금메달리스트인 미셸 카터는 13세에 투포환을 시작해 올해 생애 첫 금메달을 따기까지 17년 동안 각종 대회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다.
때로는 한 개인의 도전과 혁신이 기록 경신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리처드 포스베리(미국)는 68년 멕시코 올림픽 높이뛰기 종목에 출전해 막대를 등지고 넘는 기술인 배면뛰기를 공식 대회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올림픽 직전까지만 해도 우승권 밖이던 포스베리는 이 기술로 2.24m를 기록해 깜짝 금메달을 획득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배면뛰기는 그 이전까지 높이뛰기 선수들이 사용하던 롤 오버(옆으로 구르며 뛰기)나 가위뛰기 등의 기술보다 무게중심이 낮고 자세가 안정적이어서 같은 점프력으로도 더 높은 막대를 넘을 수 있었다. 다리벌려뛰기로 수립한 세계기록은 78년 블라디미르 야시첸코(소련)의 2.34m에서 멈췄지만 배면뛰기의 세계기록 경신은 93년 하비에르 소토마요르(쿠바)가 2.45m를 넘을 때까지 계속됐다.
수영에선 벽을 손 대신 발로 짚고 방향을 전환하는 ‘플립 턴’이 혁신 사례로 꼽힌다. 1935년 애돌프 키퍼(미국)는 스승인 텍스 로버트슨이 고안한 플립 턴을 활용해 16세의 나이에 100야드(약 91m) 배영에서 59초8을 기록하며 이 종목 최초로 1분의 벽을 깨뜨렸고, 이듬해 베를린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따냈다. 손으로 벽을 짚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당시엔 이상해 보였던 기술이지만 현재는 플립 턴이 규정으로 금지된 접영과 평영을 제외한 나머지 수영 종목에선 모든 선수가 플립 턴을 할 만큼 상식적인 기술이 됐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선 90년대부터 도입된 ‘클랩 스케이트’가 기록 향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날 뒤쪽과 신발 바닥이 분리되도록 설계된 클랩 스케이트는 신고서 뒤꿈치를 들어도 날이 빙판에서 떨어지지 않아 가속도 손실이 줄어든다. 클랩 스케이트가 보편화된 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에선 스피드스케이팅 10개 종목에서 모두 올림픽 기록이 경신되고 5개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이 나왔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신종 스케이트 신발이 스피드스케이팅을 완전히 바꿔놨다”고 보도했다.
올림픽은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해 왔다. 1900년 파리 올림픽에는 여성이 최초로 선수로 참가했고, 60년 로마 올림픽에선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 출신 흑인으로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미에서 처음 열린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도 인종과 성의 장벽을 무너뜨린 값진 ‘최초’들이 잇따라 나왔다.
백인 일색이던 체조와 수영에선 흑인 여성들이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지난 12일 시몬 마누엘이 여자 자유형 100m에서 우승한 데 이어 17일엔 시몬 바일스(사진)가 기계체조 여자 마루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4관왕(기계체조 단체·개인 종합·도마·마루)에 올랐다.
무슬림 여성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지난 5일 개막식에선 이란 역사상 최초로 여성인 이란 양궁 선수 자하라 네마티가 기수로 입장해 주목을 받았다.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극도로 제한해 왔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올림픽에 처음으로 여성 100m 육상선수 카리만 아불자다옐을 내보냈다. 히잡과 전신 운동복을 입고 달린 아불자다옐은 예선에서 7위에 그쳐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리우 올림픽에서 첫선을 보인 10인의 난민대표팀은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10일 유도 남자 90㎏급의 포폴레 미셍가(민주콩고)가 32강전에서 인도의 아브타 싱(24)에게 유효승을 거두며 역사에 남을 첫 승리를 기록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