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9월1일 일본은 미군이 바다에 매설한 기뢰에 의해 침몰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인 3725명, 일본해군 승무원 255명이 탑승했고 조선인 524명, 일본해군 25명 등 549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실종자와 생존자 수는 미상이었다.
5000명 희생된 사고 당시 배에 폭발물 실었다는 기록 공개
또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미군 기뢰가 원인이 아니라 일본의 고의 폭파설을 주장해왔다.
이런 가운데 침몰 71주년을 앞두고 우키시마호에 폭발물이 실려있었다는 일본 정부의 기록물이 처음 공개됐다.
‘발신전보철(發信電報綴)’이란 일본 방위청의 이 문서는 김문길(71) 우키시마호 폭침 한국인희생자추모협회 고문이 올 봄 일본인에게서 넘겨받아 8일 부산에서 열린 진상규명 세미나에서 공개했다. 김 고문은 “그동안 우키시마호에 폭발물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었는데, 이 문서는 폭발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지금까지 유족들이 한결같이 부르짖는 폭침설의 중요한 증거자료가 된다”고 말했다.
사실 이 문서는 우키시마호 유족 등이 92년 일본 법원에 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진행된 재판과정에서 증거자료로도 사용됐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도 이 문서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배상소송은 2003년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원고패소 판결로 결론났다.
김영주(69)추모협회 상임이사도 “일본 해군의 10%만 사망한 점 등으로 볼 때 고의허 폭발시켰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은 물론 한국 정부의 진상조사와 추모제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희생자추모협회가 2012년부터 매년 8월 24일 부산에서 희생자(8000명)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사진 및 자료 제공 우키시마호폭침한국희생자추모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