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신현준·이기웅 엮음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기획
푸른숲, 504쪽, 2만5000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와 비슷한 생애주기를 그리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선 국내 차원에서 따져보자. 1단계에서는 학자들이 그 개념에 대한 논문을 쓰고 학술회의를 연다. 2단계에서 언론에서 개념을 수입해 기사를 쏟아낸다. (네이버에서 뉴스 검색을 해보면 ‘젠트리피케이션’이 나오는 기사가 2788건 있다.) 3단계에서는 저녁 식탁에도 오르는 ‘누구나 아는 용어(household word)가 된다.
단순한 수혜·피해자 구도서 벗어나
젠트리피케이션 개념 재정립 시도
건물주·세입자 등 얽히고설킨 삶들
서울 여덟 동네 132명의 ‘증언’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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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뜨거운’ 개념의 실체는 과연 뭘까. 젠트리피케이션은 ‘젠트리화(gentry化)’다. 역사적으로 젠트리는 영국에서 귀족 계급 다음가는 신사 계급이다. 중국에서는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사신화·신사화(士紳化·紳士化)’라고 번역했다.
2, 3단계가 국내에서 한창 전개될 무렵에 1단계를 개막한 학자들은 ‘개념적 미궁’에 빠진다. 학문적으로 깊이 파다 보면, 세계화건 신자유주의건 젠트리피케이션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아무도 모르게 된다. 한편 국제 차원의 2, 3단계가 되면 개념의 현지화가 진행된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국내·국제 차원 2, 3단계에서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했다.
저자들은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승자 vs 패자’ 구도를 탈피해 살펴보겠다고 선언한다(하지만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고 하면 코끼리를 머리 속에서 지우기 힘들다. 『서울…』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수혜자와 피해자를 책 속에서 자꾸 찾아보게 만든다). 저자들은 현장으로 달려가 1095일 동안 132명의 사람을 만났다. 토박이·세입자·건물주·자영업자·운동가들을 만나 젠트리피케이션에 엮인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방법론을 선택한 것이다. 저자들이 찾은 동네는 8군데다. 서촌, 종로3가, 홍대, 신사동 가로수길과 방배동 사이길, 한남동, 구로공단, 창신동, 해방촌이다.
학술적 의문에서 시작했지만 이 책은 현장을 드러낼 뿐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결론 대신 “서울을 생각하지 않기”라는 후기로 끝난다. 청개구리 독자들은 서울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고민하게 되리라. 서점에 들리시더라도 절대 이 책 근처에도 가지 마시라.
[S BOX] 젠트리피케이션이 범죄 줄인다? 천만의 말씀
워싱턴포스트 6월 3일자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5가지 신화’라는 글을 게재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예상과 달리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면 범죄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는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이주민들이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토박이들이 다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이주하지 않을 가능성은 오히려 더 높아진다. 셋째, 토박이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싫어한다는 것 또한 신화다. 토박이들은 동네 상권 활성화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넷째, ‘침입자들’이 꼭 백인인 것은 아니다. 흑인·아시아인·히스패닉도 많이 포함된다. 다섯째, 젠트리피케이션은 경제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저절로 진행되는 게 아니다. 운동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워싱턴포스트 6월 3일자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5가지 신화’라는 글을 게재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예상과 달리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면 범죄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는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이주민들이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토박이들이 다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이주하지 않을 가능성은 오히려 더 높아진다. 셋째, 토박이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싫어한다는 것 또한 신화다. 토박이들은 동네 상권 활성화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넷째, ‘침입자들’이 꼭 백인인 것은 아니다. 흑인·아시아인·히스패닉도 많이 포함된다. 다섯째, 젠트리피케이션은 경제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저절로 진행되는 게 아니다. 운동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