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2016] 주저앉은 남편 일으켰다, 함께 바벨 잡은 아내

중앙일보

입력 2016.08.02 00:01

수정 2016.08.0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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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선수에게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은 꿈의 무대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기량이 뛰어나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6일 개막하는 리우 올림픽에는 국내 선수 중엔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올림픽에 출전해 화제다. 여자 역도 53㎏급 윤진희(30·경북개발공사)와 남자 69㎏급 원정식(26·고양시청)이 그 주인공이다.

각각 한 차례씩 올림픽에 출전했던 윤진희·원정식 부부는 리우 에서 국내 최초로 부부 동반 올림픽 출전 기록을 세우게 됐다. 지난달 남편 원정식(왼쪽)이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 윤진희.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윤진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다. 뽀글뽀글한 단발머리를 한 채 자신의 몸무게보다 두 배가 넘는 역기를 들어올렸다. 여자 역도 선수를 소재로 한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윤진희를 모티프로 한 캐릭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윤진희는 4년 뒤 런던 올림픽을 몇 개월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로서의 삶 대신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였다. 윤진희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2011년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이자 네 살 연하인 후배 선수 원정식이었다. 강원도 원주 출신인 두 사람은 태릉선수촌에서 사랑의 꽃을 피웠다. 윤진희는 “남편은 나를 항상 웃게 해주는 자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원정식·윤진희, 한국 첫 부부 출전
베이징 은메달 딴 아내 결혼 뒤 은퇴
두 아이 키우며 평범한 주부 생활
인천 아시안게임서 무릎 다친 남편
“같이 하면 힘 날 것 같아” 복귀 제안
힘든 재활 견디고 나란히 태극마크

2012년 런던 올림픽에는 원정식 혼자 출전해 7위를 차지했다. 첫번째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던 원정식은 아내의 내조 속에 더욱 기량을 끌어올렸다. 2013년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역도선수권에서 각각 3관왕과 2관왕에 올랐다. 최종근 고양시청 코치는 “아내가 선수 출신이다 보니 음식 관리를 잘 해줬다. 운동 외적인 부분에서도 편하게 해준 것으로 안다. 그 결과 런던 올림픽 이후 기록이 세계 정상급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두 사람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원정식은 대회 전 “아내가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아내에게 메달을 선물하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용상 경기 도중 왼 무릎 힘줄이 끊어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윤진희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남편의 뜻하지 않은 부상은 부부에게 새로운 계기가 됐다. 아내 윤진희 역시 다시 바벨을 들기로 한 것이다. 윤진희는 “부상을 당했던 남편이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하면 훨씬 힘이 날 것 같다’며 운동을 다시 하자고 제의했다”고 말했다.

남편 원정식의 재활 못지 않게 아내 윤진희의 복귀도 쉽지 않았다. 두 딸을 키우면서 3년 동안 바벨을 놓은 탓에 근육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힘겨운 훈련을 이겨냈다. 그리고 2015년 나란히 선발전을 거쳐 태극마크를 달았고, 리우 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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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식과 윤진희가 메달을 따낼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원정식은 지난해 11월 세계선수권 인상에서 15위에 올랐으나 용상에서는 실격당했다. 윤진희도 합계 188㎏을 들어 16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예전의 기량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 각국의 도핑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 선수들이 이득을 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종근 코치는 “기록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가면 깜짝 메달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윤진희는 “다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나와 남편 모두 큰 영광을 안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