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금융관료 '회전문 인사'논란…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 시티그룹으로

중앙일보

입력 2016.07.3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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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계에 ‘낙하산 인사’가 있다면 미국과 영국 등엔 ‘회전문 인사’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곤욕을 치렀던 미국·유럽권 금융관료와 중앙은행 총재들이 퇴임 후 금융위기에 책임이 큰 대형 금융사에 둥지를 트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이해 상충을 지적하는 비판이 거세다.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

파이낸셜타임스(FT)는 머빈 킹 전 영란은행(BOE·Bank of England) 총재가 지난 4월부터 시티그룹의 선임고문(senior adviser)로 영입돼 근무하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행보는 킹 전 총재가 그동안 은행 등 민간 금융권을 철저히 무시해 왔던 인사라는 점에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은행 고임금 비판했던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는 시티그룹으로
퇴임 직후 손수 차 몰고 연구소 출근했던 벤 버냉키 전 Fed 의장도 핌코·시타델서 '투 잡'

그는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영란은행 총재를 지내는 동안 줄곧 은행가들을 “무능하고 탐욕스럽다(incompetent and greedy)”고 비판해왔다.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엔 의회 위원회에서 “은행가들에게 일반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막대한 돈이 지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08년엔 시티그룹을 꼭 집어 “너무 많은 우수한 졸업생들이 좀더 가치있는 직장이 아닌 시티그룹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 시티행을 택한 당사자가 된 셈이다.

이달 초엔 주제 마누엘 바호주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고위 간부로 영입되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의 모국인 포르투갈은 물론 프랑스 등 유럽지역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바호주 전 집행위원장은 지난 2002~2004년 포르투갈 총리를 지낸 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EU집행위원장직을 맡아왔다. 골드먼삭스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표적인 투자은행으로 꼽힌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9일 바호주 전 집행위원장에 대해 ‘수치를 모른다’, ‘품위를 상실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

영국에선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미국의 투자은행 JP모건의 고문으로 영입된 전례가 있다. FT에 따르면 블레어 전 총리는 2008년 JP모건에 합류하면서 무려 연봉 200만 파운드(약 30억원)를 받았다.

벤 버냉키

2014년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서 퇴임 직후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으로 첫 출근하면서 직접 자동차를 모는 소탈한 면모를 보였던 벤 버냉키 전 Fed 의장도 결국 회전문을 탔다. 그는 2015년 헤지펀드 시타델에 자문역으로 취업한 뒤 2주 만에 세계 최대 채권투자사인 핌코의 자문을 맡으며 ‘투잡(two jobs)’을 뛰었다. 그가 자문역으로 받는 돈의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회 강연료가 의장 보수에 맞먹는 20만 달러(약 2억2300만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라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밥 젠킨스 전 영란은행 금융정책위원회 위원은 금융관료들의 민간금융사 행에 대해 “실제로 존재하고 인지할 수 있는 이해상충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회전문 인사가 금융관료의 전문성을 살리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금융당국과 금융가 간 유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젠킨스 전 위원은 “기득권이나 지배계층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신뢰가 극도로 낮은 상황인 만큼 정부가 이 이슈를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