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세트(회+탕) 7만원’이라는 메뉴가 눈에 띄었다. 순간 내 상상력은 통제를 벗어났다. 민어로 이름난 음식점 영란횟집(전남 목포시 번화로 42-1/전화 061-243-7311/주인 박영란)이 떠올랐다. 그 이름을 따왔구나, 속단하면서 주문을 했다. 회가 나왔는데 이상하다. 대방어·농어·광어에 민어회는 딱 세 점뿐이다. 불만이지만 참고 먹었다. 바쁜 시간이 지나자 주방에서 회를 자르던 주인 최문갑(48)씨가 나와 인사를 한다. 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영란세트의 ‘영란’이 무슨 뜻입니까.” 주인이 웃으며 답했다. “김영란법의 ‘영란’입니다. 법 시행(9월28일)에 대비해 만든 메뉴입니다.”
그렇지. 식사 대접 상한액이 1인 3만원이니 세 명이 저거 한 세트에 소주 5병 마시면 9만원이겠구나. 소주 한 병 줄이고 탕에 공기밥 먹으면 식사까지 되겠구나.
최: 비교해서 먹어보세요. 어떤 게 맛있고, 어떤 게 더 익숙한지요.
(허연 살은 처음엔 입 안에 단맛이 돌더니 쫀득쫀득한 살이 씹을수록 고소해졌다. 삼키고 나서도 고소한 뒷맛이 혀뿌리에 한 동안 감돌았다. 연분홍 살은 많이 먹던 대로 물컹하고, 흐물흐물, 입에서 녹는 듯했다.)
나: 제 입엔 맛은 허연 게 더 좋고, 많이 먹어본 건 분홍인데요?
최: 그렇죠? 서울서 민어 먹은 분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나: 둘 다 민어인가요?
최: 그렇습니다. 허연 건 주낙으로 잡은 활어고, 분홍은 그물로 잡은 선어입니다.
나: 그런데 맛이 이렇게 다르군요. 저도 민어집 좀 다녀봤는데, 맛과 색이 다 저 분홍 같았는데….
최: 제가 민어를 2013년부터 했습니다. 처음에 손님들한테 야단 많이 맞았어요. 민어 살이 왜 이리 허옇고 뻣뻣하냐는 거죠. 연한 꽃분홍색에 입에서 살살 녹아야 하는데 숙성을 안 해서 그렇다고 가르쳐주기도 하더라고요. 잘한다는 강남 민어집에 가서 숙성 벤치마킹 좀 하라는 손님도 있었지요. (품질과 가격이 낮고) 흐물흐물한 그물치 민어를 회로 내놨더니 “이제 숙성 좀 할 줄 아는구먼” 하면서 칭찬하는 손님도 봤어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살이 분홍빛이 도는 건 민어 피가 조직에 스민 겁니다. 그만큼 신선도가 덜한 겁니다. 살은 당연히 무를 테고요. 그러면 입에서 씹을 것도 없이 살살 녹지요. 사실은 물컹하고 힘없이 풀어지는 겁니다. 이걸 숙성했다고 얘기하는데, 제가 보기엔 진이 빠진 겁니다. 그물에 잡힐 때 몸부림치다가 온 기운이 다 빠진 거죠. 제 맛이 안 납니다. 피 비린내 날 겁니다. 막걸리식초 넣은 초고추장이네, 마늘·고추 다져 넣은 막된장이네 하면서 진한 양념과 함께 상에 올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다. 생선회의 본령은 양념이 아니라 살의 원 맛을 보자는 겁니다. 살아있는 민어 바로 피 빼고 최대한 이른 시간에 회 뜨면 살 색은 허옇고 씹으면 꼬들꼬들합니다. 저는 손님들에게 다른 양념 말고 고추냉이 조금 놓고 소금 살짝 찍어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래야 민어의 가장 원초적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민어회 소금 찍어 먹으라고 권하는 집은 저뿐일 겁니다. 신선도에 자신 있으니까 가능합니다. 저희 집 손님들은 이제 그물치 민어회 내놓으면 안 먹습니다.
두 가지 회를 비교하며 먹어본 회사 동료이자 풍류 동지도 탄식했다.
지금까지 민어회 먹는 사람들 이해를 못 하겠더니 이렇게 먹어보니까 알겠네요. 그 푸석푸석하고 물컹거리는 걸 값도 비싼데 왜 먹나 했었죠. 그래서 반건조민어찜을 주로 먹었는데, 이 정도로 꼬들꼬들 쫀득하고 고소하면 회가 낫지요. 허어~ 그간 민어회는 헛먹었네 그려.”
민어 값은 중북을 앞둔 며칠이 절정이다. 목포낙지 주인이 최근 거래한 시세는 한 마리 10kg 넘는 민어 1kg에 산지 어판장 낙찰가 기준으로 활어 주낙 8만원 안팎, 그물치는 6만~7만원이었다. 선어는 4만~5만원 선.
초복 전 두 달이 가장 좋습니다. 5~6월이죠. 값도 싸고 맛도 여름보다 낫습니다. ”
활어 기준은 위판장 수조에서 몸이 뒤집어지지 않고 바른 자세로 움직이는 놈이 최상품이다. 현장에서 볼 때 수조에 둬도 2~3일은 살아있을 정도로 기운이 있는 상태여야 한다. 그런 걸 우선 낙찰 받아 바로 피 빼고 얼음상자에 담아 고속버스 화물로 보내면 터미널에서 오토바이 택배를 통해 도착한다. 완도·부안·신안 민어를 주로 받는다. 주낙 활어 큰 놈이 나오면 무조건 입찰하기로 현지 대리인과 약속이 돼있다. 완도는 주낙 민어가 많고, 조금 때 주낙으로 잡은 신안 민어가 맛은 좋다. 부안은 부친 고향이어서 좋은 민어 확보가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