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설가 장정일이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시집 『햄버거에 관한 명상』, 민음사, 1987)이라며 햄버거를 예찬했던 시대는 갔다.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모건 스퍼록이 제작한 ‘수퍼사이즈 미’(2004)는 맥도날드류의 패스트푸드 남용과 비만 사회의 길항관계를 고발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은 이에게 영양을 공급하려던 목표는 품질과 입맛의 획일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 틈새를 언제부턴가 ‘수제(手製)버거’라는 신조어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장정일은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미리 조리해둔 프랜차이즈 햄버거
‘초고속 서비스’열었지만 입맛 획일화
쇠고기 등 재료 품질 높이고 풍미 살려
접시에 내놓는 1만원 넘는 버거 속속 등장
요즘 고객들‘버거 이상의 버거’원해
새로 문 연‘쉑쉑버거’2~3시간 줄서기도
사진 중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는 ‘#쉑쉑버거’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24일 현재 4만 개에 육박한다. 지난해 8월 현대백화점 판교점 개점 당시 ‘매그놀리아 컵케이크’ 광풍을 뛰어넘어 아이폰 신제품 출시 때와 비견되는 신드롬이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버거집에서도 혼잡 시간에 줄 서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나아가 장정일의 지적대로 버거는 다 손으로 작업한다. 맥도날드·버거킹·롯데리아 같은 프랜차이즈에서도 숙련된 주방 직원들이 패티(육고기를 다져 만든 소)를 굽고 빵, 양상추, 양파, 토마토 등 재료를 한데 합쳐 포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수제버거’는 고급·프리미엄에 소박한 색채를 씌우려는 과잉 수사 아닐까.
“솔직히 수제버거란 ‘형용모순’이라고 생각해요. 대량생산된 공산품의 대척점에서 수제화·수공예품 같은 핸드메이드를 강조하는 것인데, 버거는 모든 공정을 기계로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발전하지 않았거든요.”
이 말의 주인공은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수제버거집으로 알려진 ‘브루클린더버거조인트’(이하 ‘브루클린’)의 박현(36) 대표다.
수제버거라는 말을 마다할 뿐 ‘브루클린’은 프랜차이즈 버거와 차이점까지 거부하진 않는다. 버거 개발에 공동 참여한 조휘성(34) 실장에 따르면 가장 큰 차이는 프리쿡(pre-cook) 여부다. 회전율이 높은 대형 버거 체인점에선 상당 재료를 미리 만들어서 조립만 하거나 피크 타임 땐 조립·포장까지 해둔 상태로 판매한다.
브루클린 버거의 차이는? 일단 풍미다. 직전에 강한 화력과 만나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킨 갈색 패티가 구수하게 코를 자극한다. 고객의 취향에 맞춰 패티의 굽기 정도를 조절해 준다. 테이크아웃을 전제로 하는 종이 포장지가 아니라 1960년대 미국 간이식당에서 만날 법한 클래식한 사기 접시에 담겨 나온다. 일반 레스토랑처럼 포크·나이프도 갖춰져 있다. 메뉴 하나하나에 개발자의 창조성과 위트가 번득인다. 즉 이곳에서 먹는 버거는 여느 다이닝 레스토랑처럼 격조 있는 한 끼이자 ‘슬로푸드’다. “버거의 패스트푸드 이미지를 씻는 것, 그게 차별화 포인트였다”(박현 대표)는 설명이다.
‘브루클린’은 애초 프랜차이즈 버거를 경쟁상대로 놓지 않았다. “강남에는 한 끼 1만원 이상을 지불할 수 있는 수요층이 충분하다. 쫓기듯 때우는 게 아니라 버거 자체를 음미하면서 적합한 음료와 맥주를 즐기려는 이들이 호응했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쉑쉑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 버거집과 달리 와인에다 루트비어(알코올이 거의 없는 맥주)까지 갖춰 취향대로 즐길 수 있게 했다. 애견인을 위해 개밥 메뉴도 판매한다. 쉑쉑 스스로는 버거 시장에서 ‘파인 캐주얼’을 개척했다고 강조한다. ‘파인 다이닝’에 기초한 맛과 품질, 차별화된 문화를 소비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국내 외식업계는 차별화를 통한 패스트푸드 블루오션 경쟁이 시작됐다고 본다. 한쪽에선 ‘봉구스밥버거’ ‘맘스터치’ 같은 저가 브랜드가 박리다매 전략으로 돌풍이다. ‘오케이버거’ ‘버거비’ 등은 레스토랑형 고가·고품질로 승부하고 있다. 쉑쉑의 가장 싼 버거가 6900원인 것을 놓고 일각에선 ‘허세버거’라고 비웃지만 분명한 건 더 많은 선택지가 열렸다는 사실이다. “음식 값으로 쓰는 한 푼 한 푼은 투표할 때의 한 표와 같다”고 저널리스트 에릭 슐로서는 말했다. 어떤 ‘버거 문화’에 투표할지는 당신 몫이다.
음식상식 독일 지명 함부르크에서 유래한 햄버거, 미국 국민음식으로
햄버거(hamburger)의 기원에 대해선 다양한 설이 있지만 독일 지명인 함부르크(Hamburg)에서 유래됐다는 게 일반적이다. 19세기 초반 미국으로 이민 온 독일인들이 선보인 갈아서 양념한 쇠고기 요리가 ‘햄버거 스테이크’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다. 구운 빵 사이에 패티를 넣은 지금의 모습이 갖춰진 건 1880년 전후로 추정된다.
햄버거(hamburger)의 기원에 대해선 다양한 설이 있지만 독일 지명인 함부르크(Hamburg)에서 유래됐다는 게 일반적이다. 19세기 초반 미국으로 이민 온 독일인들이 선보인 갈아서 양념한 쇠고기 요리가 ‘햄버거 스테이크’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다. 구운 빵 사이에 패티를 넣은 지금의 모습이 갖춰진 건 1880년 전후로 추정된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