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160년 전통의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사상 처음으로 대선 후보가 첫날부터 등장한 것이 파격이었다. 대선 후보는 관례적으로 마지막 날(4일째)에 등단해 후보 수락연설을 해 왔다. 최초의 ‘아웃사이더 후보’답게 트럼프는 그 룰을 깼다.
5~6주 전문가와 맹훈련한 말솜씨
일부 미셸의 문장과 같아 빛바래
트럼프, 첫날부터 무대 올라와
‘후보 최종일 등장’ 160년 전통 깨져
VIP석엔 당 인사 없고 패밀리뿐
반대 측, 룰 변경 요구로 한때 소동
찬조연사로 등단한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46)는 그동안의 딱딱하고 느릿한 말투에서 전혀 딴사람이 돼 있었다. 평소와 달리 노출이 없는 흰색 원피스를 입었다. CNN은 “전문가와 5~6주간 맹훈련을 했다”고 전했다. 이날 대회를 참관한 허은아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 소장은 “억양과 톤까지 적절히 조절하며 인상적인 연설을 했다”고 평했다.
그는 연설에서 “남편의 친절은 항상 눈에 띄지는 않지만 모두가 알아볼 수 있다”며 “그 친절은 내가 처음부터 그와 사랑에 빠진 이유”라고 남편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켰다. 멜라니아가 이어 “난 2006년 7월 28일 자랑스러운 미국의 시민이 됐으며(슬로베니아 태생),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특권”이라며 “만약 내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로 봉사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면 그 멋진 특권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하자 장내는 후끈 달아올랐다. 워싱턴포스트는 “전당대회 첫날의 승자는 단연 멜라니아”라고 평했다. CNN은 “‘100% 순수함은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나”라고 했다.
그러나 연설이 끝나자마자 반전이 일어났다. 이날 연설이 2008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찬조연설에 나섰던 미셸 오바마의 것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 멜라니아 연설 중 “(제 부모님은) ‘인생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 네 말은 곧 네 굴레(bond)이니 네가 한 말을 행하고 약속을 지켜라. 사람들을 존중하라’는 가치를 심어 줬다”고 말한 부분은 미셸의 문장과 단어 한두 개 빼고는 같다. 다른 두 문장도 유사했다. 트럼프 캠프 선거대책위원장 폴 매너포트는 19일 “멜라니아는 흔히 쓰이는 단어들을 썼을 뿐 표절이 아니다. 모든 이가 주시하는 연설문을 표절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후 4시쯤에는 ‘반 트럼프’ 진영의 버지니아주·유타주 대의원들이 요구한 전당대회 진행 룰 변경이 ‘주류 트럼프’ 측에 의해 좌절되자 양측이 맞고함을 지르며 대치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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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 안전하게(Make America Safe Again)’란 테마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선 2012년 리비아 무장집단의 벵가지 미국영사관 습격 당시 사망한 미 국무부 직원의 모친 팻 스미스가 나와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는 감옥에 가야 한다”고 비난하는 등 20여 명의 연사가 일제히 민주당 클린턴 후보를 정조준했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가 중량감에서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날 VIP석에는 1996년 대선 후보 밥 돌(93)과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마이크 펜스 부부만이 자리를 지켰을 뿐 나머지 자리는 트럼프 차남 에릭과 차녀 티파니 등이 메웠다. 그나마 트럼프 패밀리는 멜라니아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떠나 버렸다. 결국 텅 빈 VIP석에서 펜스 부통령 후보 부부만 어색하게 자리를 지켰다. 트럼프 캠프 내 ‘패밀리 파워’를 여실히 보여 준 장면이었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장녀 이방카가 찬조연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