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진흥법은 1년여 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인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한 법이다. 하지만 시행 1주년을 맞는 학교에선 여전히 인성교육이 외면받고 있다.
교육부 인성교육위 구성 늦어져
회의 한 번으로 ‘5개년 계획’ 뚝딱
진보 교육감 인권, 보수는 예절 중점
일선 학교 “지침 혼선, 뭘 가르칠지”
학부모 45% “학교교육 1순위는 인성”
“정부서 의지 갖고 교육과정 바꿔야”
본지가 한국교총에 의뢰해 교사 804명을 설문해 보니 31.8%가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시행 중인 사실조차 몰랐다. 특히 교사 절반가량(45.9%)은 법에 따라 정부가 마련한 ‘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학교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는 물음엔 절반 이상(55.3%)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처럼 인성교육진흥법이 유명무실하게 된 1차적 원인은 무엇일까. 정병국 국회인성교육실천포럼 대표는 “국민 염원을 담아 국회에서 법을 제정했는데 정작 교육부는 인성교육을 홀대하고 있다. 관료들의 의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새 학기가 임박해 종합계획이 공개되면서 덩달아 시·도 교육청의 시행계획, 학교별 실천계획도 늦어졌다. 올해 55조원의 교육예산 중 교육부가 인성교육을 위해 별도 책정한 예산은 5억원(국고)에 불과하다. 그나마 내년엔 3억6000만원으로 줄어든다. 교육부에서 별도 부서로 독립시키기로 돼 있던 인성교육 전담 공무원은 5명이다.
시·도마다 인성교육의 방향이 달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진보 성향의 시·도 교육감은 학생·노동 인권, 시민의식을 강조하는 ‘민주시민교육’, 보수 성향 교육감은 효·예절을 중시하는 ‘윤리·도덕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서울 관악구 D고 교감은 “지역, 학교, 교사에 따라 추구하는 게 다르니 인성교육의 개념부터 혼란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교육부와 각 시·도가 제 갈 길을 가면서 학교·교사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곤혹스러워 한다. 서울 관악구의 E중학교 박모 교사는 “지난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 교사끼리 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유했는데, 한 학기를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고 밝혔다. 그는 “교육부도 학교장도 인성교육에 대한 의지가 없으니 일선 교사 입장에선 뜻이 있어도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교육부가 인성교육 확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요구했다. 서울 언남초 문경민 교사는 “학교·교사의 가치관과 문화를 바꾸는 데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육부가 의지만 있다면 현장에선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삼성고 최병갑 교장은 “학교는 정부가 마련한 교육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인성교육이 근본인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뿐 아니라 가정과 지역 등 온 사회의 동참 노력도 필요하다.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처럼 사회의 모든 주체가 인성교육의 모범이 돼야 한다”며 “인성교육에선 백마디 말보다는 한 번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만·남윤서 기자 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