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의 규모가 커지면서 개인 빚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결국 모든 걸 내려 놓고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당시 고교생이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가 계속 남 돕는 일 하고 살면 좋겠어.”
굿네이버스 설립·운영 25년 만에
회장직 물려준 이일하 이사장
북한에 젖소 500마리 보내기도
“정부 아동학대 전담기구 있었으면”
-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지금 어떤가
- “직원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병상에 있는 날 찾아왔다. 내가 말을 못하니 ‘회장님, 이 결정에 찬성하면 웃어주세요’ 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 이렇게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
- 25년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 “94년 르완다 내전 때 의료단을 구성해 현지 난민촌에 갔다. 정말 끔찍했다. 매일 대형 트럭이 시신 5000여 구를 실어 옮겼다. 오염된 호수물을 마시면 바로 콜레라에 걸렸다. 거기서 콜레라 환자를 하루에 200명씩 살렸다.”
- 북한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 “97년 유엔에 속한 NPO 단체의 장으로서 처음 평양에 갔다. 이후에도 120차례 넘게 평양을 방문했다. 젖소 500마리를 보내고 공장을 지어주기도 했다. 2008년 이후에는 가보지 못했다.”
- 가장 힘든 활동이 뭔가.
- “굿네이버스는 각 지역마다 아동학대 신고센터를 두고 학대 피해 아동이 머무는 그룹홈을 운영 중이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매일 신고 전화를 받느라 직원들이 녹초가 된다. 정부 차원의 아동학대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
- NPO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 “동 단위로 최소한 한 개 이상의 NPO가 주민과 함께 지역사회의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풀뿌리 NPO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 기부금이 민간 단체에 고루 돌아가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 “굿네이버스는 100만 명 넘는 회원이 모여 이제 국내 토종 NPO 중 유일하게 기부금 기준 10위권 안에 드는 단체가 됐다. 그 과정에서 내 나름의 족적을 남긴 것 같아 뿌듯하다. 당장은 미국 굿네이버스 지부로 가서 글로벌 자금 유치, 대북 지원 등의 소임을 다하려 한다.”
글=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