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일 ‘남중국해 판결’ 또 다른 시험대…정부, 미·중 사이 등거리 외교 전략

중앙일보

입력 2016.07.11 02:30

수정 2016.07.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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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가 끝이 아니다.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칠 또 하나의 외교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예정된 중국과 필리핀 간의 남중국해 영유권 판결도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 외교의 시험대다.

남중국해 이슈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은 ‘등거리 외교’였다.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국의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요청한 것은 우리는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준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라며 “만약 중국이 그런 면에서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로 중국과 관계 악화될 우려
정부, 미국 편들기 인상 안 주려
‘항행 자유, 평화적 해결’ 원론 견지
ASEM서 대통령·리커창 회담 기대

하지만 지난해 11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박 대통령은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남중국해 행동선언(DOC) 상의 비(非) 군사화 지지’라는 3원칙을 밝혔다.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일본이 미국의 남중국해 구축함 파견을 지지하고 중국의 인공섬 건설을 비판하는 등 노골적으로 미국 편을 든 것과는 뚜렷하게 대비됐다.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판결을 앞두고 지난주부터 하이난섬 남쪽 파라셀(시사·西沙) 군도 전역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중국·대만·베트남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해 헤이그 상설 중재재판소가 12일 첫 영유권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중국은 이 사진을 9일 공개했다. [신화=뉴시스]

이번 재판을 앞두고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책회의 등을 통해 PCA 판결 결과에 상관없이 기존 입장을 유지하자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남중국해 이슈에 정통한 외교 당국자는 10일 “PCA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정부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미국 입장에서는 다소 불만이겠지만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을 거들 기는 어렵다. 미국도 이런 점을 양해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정부는 PCA가 필리핀에 우호적인 판결을 내리게 될 경우 ‘우리 정부의 중립적인 입장’이 향후 대중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기류다. 중국 정부가 그동안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도, 따르지도 않겠다”며 강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희옥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은 “미·중 경쟁구도에서 중국엔 북핵 이슈보다 사드 배치가, 사드 배치보다는 남중국해 이슈가 자신들의 국익에 더욱 중대하다”며 “향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이 기존의 원칙론에서 진전된 입장을 내놓아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는 ‘외교적 신호’를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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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PCA 판결 이후 15~16일 몽골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때 우리의 중립적인 입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 간 회담 성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회담 성사 여부에 따라선 사드 배치로 악화된 한·중 관계가 다소나마 진정 국면에 접어들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등거리 외교’가 한·중 관계 악화를 막는 해법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위성락(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서울대 객원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사드와 남중국해 분쟁에서 너무 오랫동안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다가 실기(失機)한 측면이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고 중장기적으로 우리 주도의 대중 외교, 대미 외교를 펼쳐 나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