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진료수가 42% 올랐는데 노인진료비 기준 16년째 1만5000원

중앙일보

입력 2016.07.08 01:31

수정 2016.07.08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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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동강면 선근호(87)씨는 무릎 관절염 환자다. 일주일에 두어 번 버스를 타고 인근 마을 병원에 나가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는다. 매번 병원에 5000원가량의 진료비를 낸다. 차비에다 약값을 더하면 1만원 이상 든다. 기초연금으로는 병원비 대기에도 빠듯하다. 선씨는 “병원비가 비싸 두 번 갈 것을 한 번밖에 못 가. 촌에서 무슨 돈이 있어. 통증을 참기 힘드니까 할 수 없이 병원에 가지”라며 “자식들한테 손 벌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이 많이 먹은 사람 부담 좀 덜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웃 마을인 공산면에 사는 최선만(71)씨는 농사일을 하느라 관절이 안 아픈 데가 없다. 일주일에 두세 번 병원에서 물리치료와 주사 치료를 받는다. 최씨는 “돈 있는 사람에게 5000원은 별것 아니겠지만 우리에겐 적은 돈이 아니다”고 말한다.
선씨와 최씨가 방문한 곳은 동네의원이다. 65세 이상 노인이 동네의원에 가면 1500원의 정액을 내면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 돈의 세 배 이상을 냈다. 왜 그럴까. 1500원만 내려면 전체 진료비가 1만5000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두 사람의 진료비는 진찰료(재진료 1만원)에 주사·물리치료 등을 합해 1만6000원가량 나왔다. 그러면 진료비의 30%를 내야 한다. 전체 진료비가 기준선(1만5000원)을 1000원 초과했는데도 환자 부담이 세 배로 뛰었다.
기준선 1만5000원은 2001년 7월 설정한 것이다. 2001년 이후 진료수가가 42%(비누적) 올랐는데도 기준은 그대로다. 내년엔 진료수가가 3.1% 오를 예정인데, 이 경우 초진 진찰료가 1만4860원이 돼 간단한 검사만 해도 기준선을 초과하게 된다.
진료수가가 오르면서 1500원만 내면 되는 동네의원 노인 외래환자는 2011년 79%에서 지난해 68%로 줄었다. 반면 진료비의 30%를 내는 정률제 적용 환자가 증가했다. 노인 부담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뜻이다. 나주시 공산의원 이병일 원장은 “노인들이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 받으면 진료비가 1만6600원이다. 이렇게 되면 정액제 기준을 초과해 환자가 4900원가량 내야 한다”며 “환자들에게 아무리 제도를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일부는 5000원을 내면서 화를 내는데, 그러면 물리치료 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돈을 덜 받으면 ‘진료비 할인’을 금지한 의료법을 위반한 것으로 몰릴 수도 있다. 부산시 동구 범일연세내과의원 이동형 원장은 “환자가 1500원만 내고 나머지는 미수금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2007년 7월까지는 모든 환자가 정액제 적용을 받았다. 그러다 65세 미만은 무조건 동네의원 진료비의 30%를 부담하도록 바뀌었다.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고 의료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노인은 정액제를 유지했다. 이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노인 빈곤율(48.6%) 때문이다. ‘노인 표’를 의식한 측면도 있다. 기준선을 손대지 않은 이유는 급증하는 노인 의료비(지난해 전체의 38%) 때문이다. 일부 환자가 ‘의료 쇼핑’을 하듯 너무 많이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문제점도 고려했다.
대안의 방향은 두 가지다. 기준선을 올리거나 정액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과 노인이 많은 전남·경북의사회가 지난달 말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을 찾아가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정액제 기준선을 단계적으로 2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의협은 ▶정액제 기준선을 2만5000원으로 올리거나 ▶2만원으로 올리되 1만5000원까지는 지금처럼 1500원, 1만5100~2만원은 초과액의 30%를 부담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기준액 이하면 1500원만 내지만
초과 땐 진료비의 30% 부담해야
주사 맞고 물리치료만 받아도 초과
“기준 2만~2만5000원으로 올려야”
진료비 25% 부담 정률제 주장도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인 빈곤율을 감안할 때 정액제를 폐지하면 진료를 제때 못 받아 병을 키울 수 있다”며 “정액제 기준선을 2만원으로 올리되 환경 변화를 감안해 대상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조재국 동양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는 “정액제를 폐지하고 정률제로 바꿔 노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해야 한다”며 “대신 노인에 한해 진료비의 25%(나머지는 지금처럼 30%)로 낮추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양한 방안을 두고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올해 안에 개선안을 내놓을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