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임기를 6개월 남겨두고 나온 이번 조치는 지난 2월 발효된 대북제재강화법에 따른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제정된 이 법 304조에 따라 국무부가 북한 내 인권 유린과 내부 검열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의 구체적 행위를 파악해 의회에 보고하자 이를 토대로 재무부가 즉각 김 위원장 등 15명과 여덟 곳의 기관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오바마판(版) 대북 압박 조치의 완결판이라고 할 만하다.
북한의 인권 탄압이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다. 매년 발행되는 미국의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은 늘 최악의 인권탄압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고문·처형·강간·성폭행이 수시로 자행되는 정치범수용소 등 북한 내 인권 유린 실태를 담은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의 이번 보고서는 이미 제기돼 있는 혐의들을 취합해 정리한 것으로,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 제재 리스트에 올라간 김 위원장 등 개인이나 기관에 대한 제재 내용도 미국 내 자산 동결이나 미국 입국 금지가 다여서 특별히 실효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김정은=인권 탄압자’로 낙인 찍어 미국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은 북한 정권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를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해 강력히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수록 미국의 대북 압박이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은 이번 조치에 대해 핵·미사일 도발과는 별도로 북한 인권을 겨냥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치의 근거가 된 대북제재강화법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제정됐다는 점에서 문제의 근원이 북한의 핵 개발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인권이 북한의 ‘아킬레스 건’이라는 건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다.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라면 핵은 한반도 평화와 국제 비확산 체제의 문제다. 미국으로선 둘 다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초강수에 초강수로 맞서기 전에 북한이 처한 상황을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버티면 버틸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북한 주민들이다. 진정으로 북한 인민을 위한다면 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핵 문제에 대해 일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