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상읽기

[세상읽기] 북한 김정은의 착각이 불안한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16.06.24 01:08

수정 2016.06.24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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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

6·25전쟁 도발 석 달 전인 1950년 3월 말 북한 내각 수상 김일성은 특별기로 모스크바로 향했다. 부수상이자 외무상을 겸하고 있던 박헌영이 그를 따랐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난 김일성은 남침 계획을 꺼냈다.

이미 그해 초 “공화국 남반부 인민들은 나를 신뢰하고 우리 무장력에 기대하고 있다. 남조선 해방을 위한 공격에 소련 측의 지시와 허가가 필요하다”고 통보한 터였다. “사흘이면 전쟁이 결판날 것”이라며 간청하는 김일성을 거들어 박헌영이 나섰다. “전쟁이 시작되면 남조선에 있는 20여만 명의 남로당원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우리를 도울 것”이란 얘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당수인 박헌영이 월북하고, 새 지도부를 이끌던 김삼룡·이주하까지 잡히면서 남로당은 이미 지리멸렬한 상태였다. ‘남반부 해방’이란 뜻을 이루지 못한 김일성은 종전 직후인 1953년 8월 남로당계 숙청을 명분으로 박헌영을 체포했고, 2년 뒤 반당·종파와 간첩 혐의를 씌워 처형했다.

김일성은 북한군 창설 15주년 행사가 열린 1968년 2월 “박헌영은 거짓말쟁이였다”고 비판하며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박헌영의 잘못된 정세 판단과 이를 과신한 김일성의 잘못으로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대참화가 벌어졌고 그 상흔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6·25 발발 66주년인 올해 북한에는 또 하나의 김일성이 군림하고 있다. 조(祖)-부(父)-손(孫)에 걸친 3대 세습으로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다. 김정은 집권 5년은 할아버지의 통치유형을 그대로 본떠 권력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 부족한 카리스마를 채우는 데도 집중했다. 헤어스타일과 안경은 물론 체형, 연설 스타일까지 세심하게 연출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건너뛴 것 같은 모양새에선 격세유전(隔世遺傳)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거침없는 김정은의 행보에선 불길한 기운이 감지된다. 그제 아침 김 위원장은 강원도 원산에서 무수단(BM-25)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시험발사를 참관했다. 앞서 4월 이후 네 차례의 실패를 넘어선 말 그대로 ‘4전5기’의 결과다.

한껏 고무된 김정은은 “적들을 항시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공격수단을 가져야 한다. 선제 핵공격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 강화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관영 선전매체들의 전언이다. 원산에서 3500㎞ 떨어진 미국령 괌의 앤더슨 기지를 사정권 안에 넣게 된 점을 의식한 듯 “태평양 작전지대 안의 미국 놈들을 전면적이고 현실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가졌다”는 언급도 했다. 그는 지난 3월 핵탄두를 직접 앞에 놓고 찍은 사진을 노동신문 1면에 공개토록 한 적이 있다. 이번엔 미국을 겨냥한 투발수단까지 보유했음을 선언한 셈이다.

김정은 정권의 대남 태도는 더욱 노골적이다. 지난 1월 제4차 핵실험 이후 ‘서울 불바다’ 폭언 등을 이어오던 북한은 갑작스레 대화 모드로 돌아섰다. 지난달 초 노동당 7차 대회에서 김정은이 제안한 ‘남북 군사회담’이 계기가 됐다.

우리 정부가 진정성을 의심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평양 측은 다시 도발 모드로 발톱을 세웠다. 이른바 ‘정부·정당·단체 공동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들으라 겁박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의 조국통일 대전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통일대전’은 김정은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제2의 6·25를 의미한다. 마치 대한민국의 운명을 자신들이 쥐락펴락하는 듯 허장성세하고 있는 것이다.

10대 시절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를 5~6년간 다닌 김정은은 넓은 세상을 경험했다. 그가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할아버지·아버지와 다를 것’이라거나 ‘개혁·개방 노선을 택할 것’이란 기대가 나왔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절대권력에 도취된 ‘조기유학파’ 수령은 핵에 대한 집착과 공포정치로 내달렸다. 관영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언급만 꼼꼼히 짚어봐도 김일성·김정일보다 훨씬 호전적이란 게 드러난다. 서울을 향해서는 통제불능의 오만함과 증오를 토해 내고, 워싱턴 쪽으로는 과대망상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폭주기관차 같은 그를 멈추게 할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경제·핵 병진’이란 간판을 내걸고 실제로는 핵에 ‘다 걸기(올인)’를 하고 있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망도 당장 결정적 약발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심각한 건 그를 보좌하는 노동당과 군부의 측근들이다. 고모부 장성택까지 무참히 처형하는 장면을 목도한 그들은 권력 앞에 고개를 숙였다. 자리보전 수준을 넘어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처절한 굴종을 강요당하는 모습이다. 노련한 참모들마저 제대로 조언하기를 포기한 채 최고지도자를 찬양하고 떠받들기만 하는 분위기가 평양 권력 핵심부에 팽배해 있다. 김정은의 착각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이다.

6·25를 일으킬 당시 김일성은 38세였다. 지금 북한은 32세의 김정은이 통치하고 있다. 이성보다 좌충우돌의 혈기가 지배할 나이다. 할아버지의 호전적 유전자에 핵 야망까지 더해진 북한의 청년 지도자가 불안해 보이는 이유다.

이 영 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