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이 자신이 가진 효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시키는 과정을 발효(醱酵)라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발효 음식은 인간이 처한 자연 환경과 조건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발효 음식에선 당초 알고 있던 맛에서 벗어난 미지의 맛이 등장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이를 일컬어 ‘제3의 맛’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강력한 냄새·색깔·이미지 때문에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삭힌 홍어’가 그러하다. 누군가에게는 쿰쿰하고 톡 쏘고 아린 별미(別味)지만 어떤 이에게는 코를 찡그리게 하는 암모니아 냄새이자 부패취(putrified flavor)로 다가온다. 발효 음식엔 개인의 취향뿐 아니라 문화적 이해가 작용한다.
[맛있는 월요일] 먼나라 이웃 입맛 ⑨ 발효가 만든 ‘제3의 맛’
영국의 웬슬리데일 치즈 역시 수도사들의 치즈다. 프랑스 로크포르에서 건너온 시토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정착해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엔 꼬릿한 향취의 블루치즈로 시작됐으나 오늘날은 산뜻하고 진한 향기를 담은 크리미한 치즈로 발전했다.
나폴레옹은 그의 연인이자 훗날 황후가 된 조세핀의 체취가 카망베르 향과 같다며 전장에서 이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당신을 애타게 그리워하오. 일주일만 지나면 당신을 볼 수 있소. 그대, 그때까지 목욕을 하지 마시오. 지금 그대로의 몸으로 나를 기다려 주시오. 당신의 냄새가 그립소.”
그들에게 치즈가 있다면 우리에겐 된장이 있다. 우리나라 장류(醬類)의 시원은 기원 전후로 내다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기원전 2000년께 청동기시대 유적지인 함북 회령, 평양, 팔당 등지에서 콩의 유물이 발견됐다. 콩의 작물화는 콩을 발효시킨 장류의 발전을 가져왔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을 보면 전통 장류가 우리 식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장류와 시류(?類)가 나뉘어 주로 황두와 밀로 메주 원료를 삼았다. 일본은 대두와 쌀·보리·밀 등으로 장국(醬麴·메주)을 구성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콩만 이용해 메주를 만든다. 일본은 그 안에 배양된 코지균(Koji·곰팡이균류의 일종)을 넣는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자연 발효가 어려웠기에 선별한 배양균을 삶은 콩과 곡물에 섞어 만드는 것이다. 일명 ‘공장식 된장’은 표준화와 대량 생산을 위해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일정 온도를 통해 잡균이 사멸하고 살아남은 균들은 다시 이듬해 봄에 소금물과 만나 또 한 번 발효 과정을 거친다. 곰팡이와 세균은 휴지(休止) 상태에 들어가지만 알코올을 생성하는 효모균이 작용한다. 간장과 된장으로 분리하는 ‘장 가르기’를 하고 나면 수분 함량과 재료에 따라 그에 맞는 미생물들이 번식해 제각각 고유의 맛을 지니게 된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정훈의 미래의 밥상
⊙3D프린터로 뽑은 파스타로 로봇 셰프가 차리는 식탁, 식재료 미묘한 맛 살려낼까
이 가운데 특히 된장은 곰팡이·세균·효모 등 세 가지 미생물을 짜임새 있게 이용한 지혜로운 발효과학의 산물이다. 지역, 온도, 만드는 사람, 재료, 방법에 따라 모두 다른 맛을 내니 가장 어렵고 귀한 것이 된장이다.
일반적으로 된장은 국·무침·조림·절임 등에 이용된다.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여내는 음식보다 즉석 조리를 선호하는 현대인의 식습관에 따라 된장을 넣을 때도 간이 심심해졌다. 짭쪼름하게 조려낸 된장조림보다는 애호박에 근대와 논우렁살 등을 넣고 삼삼하게 끓여 낸 된장국을 선호한다. 나물의 향미를 즐기기 위해 최소한의 된장과 들기름만으로 조리하는 무침이 인기다. 쌈 채소에 곁들이는 쌈장을 만들 때도 견과류와 콩가루, 다시 육수 등을 이용해 은은하게 맛을 내는 편이다.
요즘 세계 미식계에선 ‘발효의 맛’에 관심이 높다. 발효 장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한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요즘 우리가 치즈를 별미로 즐기고 있듯, 그들도 된장의 애틋한 맛을 알게 될 날이 올까. 사뭇 궁금해진다.
우유를 원료로 푸른빛의 곰팡이를 첨가해 숙성시킨 치즈를 블루치즈라고 한다. 표면에 곰팡이에 의한 푸른색 대리석 무늬가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부서지기 쉬운 연한 조직이고 자극적인 풍미와 독특한 감칠맛을 지녔으며 약간 짠맛이 난다. 영국의 스틸턴, 이탈리아의 고르곤졸라, 프랑스의 로크포르 등이 유명하다.
강지영(세계음식문화연구가)·정신우(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