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해운동맹 가입 한진에 달렸다?

중앙일보

입력 2016.06.20 00:01

수정 2016.06.2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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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자금 지원을 둘러싼 채권단과 한진그룹의 기싸움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는 채권단이 “경영정상화 시 우선매수청구권을 줄 테니 1조원을 지원하라”며 조양호(사진) 한진그룹 회장을 압박하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한진그룹에 새 협상 카드가 생겼다. 현대상선 경영정상화의 열쇠인 국제 해운동맹 가입 결정권을 한진해운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이달 초 주주총회에서의 출자전환 의결로 사실상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간 반면 한진해운은 아직 한진그룹이 경영권을 갖고 있다.

채권단 “한진해운에 1조 지원”요구
찬성카드로 압박 수위 낮추기 추측

19일 금융당국과 채권단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국제 해운동맹 재편 과정에서 새로 생긴 ‘디얼라이언스(THE Alliance)’에 이달 초 가입 신청서를 보냈다. 다른 주요 동맹(2M·오션)은 이미 회원사 구성을 마친 반면 디얼라이언스는 아직 추가 신청을 받고 있다.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하려면 기존 6개 회원사인 하팍로이드(독일), 양밍(대만), NYK·MOL·K-라인(일본), 한진해운(한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일찌감치 찬성 의사를 밝힌 4곳과 달리 한진해운·K-라인이 입장 표명을 유보하면서 채권단의 속을 태우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한진그룹이 현대상선의 해운동맹 가입을 ‘지렛대’ 삼아 채권단의 압박 수위를 낮추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상선 가입을 돕는 대신 한진그룹의 지원자금 규모를 줄이고 채권단의 신규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채권단은 ‘신규 자금 지원 없이 자체 생존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가입해도 한진해운과 노선이 별로 중복되지 않는다”며 “일본 K-라인은 그렇다 치고 같은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의 동업자 정신이 아쉽다”고 말했다.


특히 채권단은 ‘빨래론’으로 한진해운의 해운동맹 ‘지렛대’ 논리에 맞서고 있다. 현대상선이 세탁이 잘 돼 깨끗해지고 있는 옷이라면 한진해운은 아직 때묻은 옷이라는 설명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얼룩이 남아 있는 옷을 다시 입을 수 없는 것처럼 한진해운이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빨래론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원칙에도 적용된다. 이 관계자는 “빨래가 잘 되고 있는 현대상선 세탁조에 한진해운을 넣으면 둘 다 더러워질 뿐”이라며 현 시점에의 합병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둘 다 깨끗한 옷이 되면 그때는 한 옷장에 넣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합병은 한진해운·현대상선이 모두 경영정상화가 됐을 때 가능하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은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다 꺼낸 상황”이라며 “당분간은 한진그룹의 입장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 보겠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