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A는 백혈병·림프종·다발골수종 같은 혈액암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학술대회. 전 세계 혈액 질환 전문가 1만5000여 명이 학술대회가 열린 덴마크 코펜하겐 벨라센터(Bella center)에 모였다.
유럽혈액학회서 주목받은 ‘블리나투모맙’
올해로 21회를 맞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것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의 치료제인 ‘블리나투모맙(제품명 블린사이토)’이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병은 희귀 백혈병 가운데서도 성격이 가장 고약하다. 종양 세포가 빠르게 번식해 예후가 매우 나쁘다. 성인 환자 생존율은 30% 내외로, 우리나라 전체 암 생존율 69.4%(2014, 중앙암등록본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독한 항암제 서너 개를 한꺼번에 쓰면서 적극적으로 치료해도 쉽게 재발·전이된다. 재발 시 생존율은 7% 아래로 떨어진다. 우리나라엔 200여 명, 유럽과 미국엔 각각 2300여 명이 이 희귀 백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학술대회에선 2014년 마무리되지 않은 임상시험(3상)의 최종 결과가 발표돼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성인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환자의 전체 생존기간(OS·Overall Survival)은 기존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했을 때 4.0개월에 그쳤지만 블리나투모맙으로 치료했을 땐 두 배에 가까운 7.7개월이었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처방하거나 다른 항암제와 병용했을 땐 생존기간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의학계에선 기대한다.
면역체계 이용해 백혈병 치료
그가 블리나투모맙을 주목한 것은 기존 항암제에 비해 독성이 훨씬 적다는 이유도 있다. 기존 세포 독성 항암제는 종양세포와 정상세포를 가리지 않는다. 종양세포를 파괴할 때 정상세포까지 공격해 각종 부작용이 쉽게 나타난다.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엔 더 적극적으로 항암제를 쓰다 보니 머리가 빠지거나 구토를 하는 등의 부작용이 심하다. 전체 환자의 10~15%는 백혈병이 아닌 항암제 부작용으로 사망할 정도다.
종양세포와 면역세포를 잇는 독특한 작용 원리 때문에 블리나투모맙은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다른 백혈병 치료에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이와 관련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톱 교수는 “CD19라는 단백질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을 포함한 여러 혈액암(B세포에 의한 혈액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를 토대로 블리나투모맙을 비호지킨 림프종 등 다른 혈액암 치료에 사용할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덴마크 코펜하겐=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