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와 그의 남편 리베라를 조명하는 전시가 근래 잇따라 열려 칼로에 대해 식상해하는 이도 혹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이들이더라도 ‘부서진 척추’만큼은 꼭 볼 것을 권한다. 사람이 겪는 고통의 무게를 이 그림처럼 실존적으로 생생히 표현한 작품도 드물다.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척추’
칼로는 열여덟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온몸이 거의 으스러지는 경험을 했다. 그가 세 번이나 유산을 하고 불과 마흔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난 데는 이 사고의 영향이 컸다. 짧은 생을 살면서 그는 무려 30회가량의 수술을 받았다. 이런 육체적인 고통에 더해 남편 리베라가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바람을 피우는 등 인간적인 고통도 컸다. 그림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던 그는 이렇듯 영원한 고통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그렸다.
이 그림만큼 유명한 것은 아니어도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른 인상적인 걸작이 이번 전시에 출품됐다. 바로 ‘몇 개의 작은 상처’다. 침대에 벌거벗은 여인이 누워 있고 그 곁에 한 남자가 서 있다.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고 여인은 난자당해 끔찍한 상태다. 피가 여인의 몸과 침대, 바닥을 넘어 그림 액자에까지 번져 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직전 칼로는 세 번째 유산을 했고, 발가락을 자르는 수술을 받았으며, 남편이 여동생과 간통하는 일을 겪었다. 그 고통 중에 그는 한 신문기사를 보고 이 그림에 착수했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 한 남자가 술에 취해 아내를 잔인하게 칼로 찔러 죽였다는 기사였다. 재판정에 선 남편은 판사에게 “내가 한 거라곤 몇 차례 콕콕 찌른 것밖에 없다”고 했다 한다. 칼로는 그 무심함과 무정함에 절망을 느꼈다. 자신의 고통과 이에 대해 무심한 세상이 겹쳐져 다가왔다. 바로 그 무심함과 무정함을 주제로 그는 이 그림을 그렸다.
어쩌면 저 남편도 무정한 환경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라왔을지 모른다. 무정이 무정을 낳고 분노가 분노를 낳는다. 칼로의 예술 전반이 시사하듯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중요한 힘은 공감과 배려, 사랑이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더욱 절절히 다가오는 주제의 그림이다.
이 주 헌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