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번역 데버러 스미스 “한국의 훌륭한 문학작품들 덜 알려져”

중앙일보

입력 2016.06.16 00:58

수정 2016.06.16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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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나 명예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문학작품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시작한 거다.”

15일 기자회견에서 데버러 스미스는 “부나 명예를 바라고 한 번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28세의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는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그는 한국문학번역원 초청으로 서울국제도서전 기간(15∼19일) 중 열리는 한국문학 세계화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지난달 한강과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공동 수상할 때는 눈물을 쏟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차분하게 응했다. “말하기보다 문장을 쓰는 게 편하다”며 스마트폰에 써온 소감문에서 그는 “주변에서 맨부커상 수상이 번역계 전체의 쾌거라고 해서 기뻤다. 많은 영국인들이 한강 소설을 읽고 있고,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도 많다”고 소개했다.

‘만화 → 망가’ 표기하자는 제안 거절
한국의 노벨상 집착 당황스러워

질문은 번역과정에 집중됐다. “한국의 역사·문화적 특수성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묻자 스미스는 소주·만화의 예를 들었다. 당초 영국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소설 문맥상 의미는 분명하지만 독자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소주는 ‘한국 보드카’, 만화는 일본식 표현 ‘망가(マンガ)’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소주·만화가 다른 문화를 본 딴 파생물처럼 비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했고, 결국 편집자들이 생각을 바꿨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영국인들이 한국 문학작품에 점점 익숙해지면 언젠가 한국의 문화 산물이 스시나 요가처럼 쉽게 이해될 날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번역 대상 작품은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에는 “작품의 플롯이나 인물, 배경은 고정돼 있어 번역자가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문체가 특이하고 독창적인 작품에 끌린다”고 했다. 『에세이스트의 책상』 등 한국인도 읽기 쉽지 않은 배수아의 소설을 세 편이나 번역해 놓은 데 대한 설명이었다. “도전적인 작품을 즐긴다”고도 했다.

그는 “나라마다 문학 세계가 매우 다르고 이질적이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문학이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더도 덜도 아니고 다른 나라만큼 훌륭한 작품들이 한국문학에도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을 타는데 번역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느냐고 묻자 “노벨상에 대한 이런 집착이 약간 당황스럽다”고 했다. 또 “한국어를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언어를 배우자 문학작품을 읽고 번역하고 싶어졌고 그게 강한 동기가 돼 언어를 더 열심히 배운다”고 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