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4050 형님들의 ‘나도 벤처’

중앙일보

입력 2016.06.03 00:01

수정 2016.06.0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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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 4050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해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왼쪽부터) 조봉한 전 삼성화재 부사장(교육 콘텐트 깨봉수학 개발), 이준희·진오민 펀앳 공동 창업자, 김기석 더불어플랫폼 대표. [사진 전민규 기자]

누가 창업은 젊어서 하라 했나. 잘 나가는 최고경영자(CEO)·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스타트업을 차린 이들이 있다. 돈과 사회적 지위 대신 도전하는 기쁨을 택한 ‘4050 형님들’이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의 창업자로 잘 알려진 이준희(52) 펀앳 이사와 미국과 한국에서 중견기업 CEO를 지낸 진오민(46) 펀앳 대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업체 ‘펀앳’을 창업해 하반기에 ‘타운톡’ 앱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 앱은 동네 상인과 주민을 이어주는 SNS로 주민 우대 서비스·타임 세일(특정 시간대의 가격 할인) 정보 제공, 커뮤니티 등이 주요 기능이다. 인증을 거쳐 실제 주민만 해당 지역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옥션 창업자, 인공지능 전문가…
돈·지위 버리고 스타트업 도전장
“지금 연봉, 예전 월급보다 적지만
자금력·경험·인맥, 청년보다 강점”

진 대표는 “SNS가 발달했지만 현실 속 상호 관계는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상인들에게 무료로 홍보의 장을 마련해줘 기존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서비스의 부정적인 면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는 “회원이 늘어나면 상거래·광고 같은 여러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펀앳의 창업 멤버 6명 중 막내 김영(23)씨는 이 이사의 아들 뻘이다. 이 이사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창업자들과 실행력이 강한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준다”며 “옥션을 창업할 때처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진 대표는 “구글 같은 세계적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김기석(47) 더불어플랫폼 대표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메릴린치 서울 대표 등을 역임한 20년 경력의 금융맨이다.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 회사 더불어플랫폼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크라우드 펀딩을 중·고등·대학교 수업에 활용해 학생들의 교육과 접목하는 데 주력한다. 지난 5월 29일에는 연세대 창업지원단과 교내 스타트업 양성에 나서기로 계약했다.

김 대표는 “한국의 계·동문회·경조사 문화가 모두 크라우드 펀딩의 시초”라며 “모임 문화에 맞는 한국식 크라우드 펀딩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8월에는 농협과 제휴해 SNS에 송금기능을 더한 미니 크라우드 펀딩 앱 ‘더불어모아’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 앱에서 동호회나 일회성 모임을 하며 지인들과 쉽게 모금에 참여할 수 있다. 얼마 전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 중개업체 등록 신청도 마쳤다.


김 대표는 “대표 임기가 끝나고 다른 은행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정년만 기다리며 살기는 싫어 거절했다”며 “굵직한 의사 결정을 한 경험이 스타트업 창업에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직접 해야 하고 현재 연봉이 예전 월급보다도 적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며 웃었다.

더 늦으면 창업을 못할 것 같아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는 조봉한(51) 전 삼성화재 부사장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수학 교육 플랫폼 ‘깨봉(quebon·프랑스어로 ‘무엇이 좋을까’라는 뜻. 우리 말로는 ‘깨우쳐주는 방망이’란 뜻을 겸한다)수학’을 개발해 직접 강사로 나섰다. 이달 중 법인 등록을 마칠 계획이다.

조 전 부사장은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우수한데도 뛰어난 수학자가 안 나온다”며 “수학의 본질을 꿰뚫어 공식을 외울 필요 없는 교육법을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깨봉수학의 특징은 이미지화와 추상화로 알려주는 수학이다. 가령 15²과 16²의 차이를 공식에 대입해 기계적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직사각형 모양의 변화로 알 수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자신이 직접 강사로 출연하는 온라인 콘텐트를 올해 말 출시할 계획이다. 200인치 화면으로 수업하는 오프라인 러닝센터도 함께 연다. 학습할 때 인공지능이 학생의 수준을 파악, 그에 맞게 숙제를 내고 설명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세계 어디서든 경험할 수 있는 양질의 표준화된 콘텐트로 교육 업계의 스타벅스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창업하는 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조 전 부사장은 “패기나 과감함은 젊은 세대보다 부족할지 몰라도 자금력·경험·인맥은 ‘4050 창업’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는 “하지만 전문 지식과 명확한 목표 없이 현실 도피를 위해 창업하면 100% 실패한다”고 조언했다.
 
◆이준희(52·이사)·진오민(46·대표) 펀앳 공동 창업자=이 이사는 1997년 인터넷 쇼핑몰 옥션을 설립해 4년 후 미국 이베이에 17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이후 동영상 공유 플랫폼 ‘디오데오’, 온라인 쇼핑몰 ‘원어데이’를 창업했다. 진 대표는 컨설턴트 출신으로 미국 의료기기회사 셀유피딕과 한국 자동차 부품회사 코렌즈의 CEO를 지냈다.

◆김기석(47) 더불어플랫폼 대표=미국 위스콘신대와 동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20여 년 동안 외국계 금융사에서 금융상품 거래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JP모건 서울·홍콩 이사,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메릴린치 서울 대표, 호주뉴질랜드 은행(ANZ) 서울 대표를 역임했다.

◆조봉한(51) 깨봉수학 개발자=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인공지능을 전공했다. 미국 오라클·필립스에서 일하다 한국에 들어와 하나금융지주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와 하나INS 대표를 역임했다. 2014년 삼성화재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해 10월 창업을 위해 그만뒀다.

글=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