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직장인 붐비는 서울대입구역 뒷골목
낮엔 평범한 시장, 밤엔 다국적 식당 불 밝혀
수제버거·비스트로·심야식당 등 한잔하기 딱
지난 5월 23일 오후 2시,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샤로수길이 있다는 관악로 14길을 찾아 150m쯤 걸었다. 엔제리너스 카페와 올리브영 사이에 있는 골목인데 한 번에 찾지 못하고 두세 번 헤매다 입구를 찾았다. 길 초입 벽에는 ‘서울대학교 정문의 샤와 가로수길을 패러디한 개성 있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거리’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여기서부터 낙성대입구 교차로에 이르는 600m 남짓한 길. 여기가 요즘 서울대생 사이에 새로 떠오르는 아지트, 샤로수길이다.
허름한 식당과 24시간 PC방, 당구장이 밀집한 거리. 트렌드를 좇는 이들이 모이는 카페나 낭만적인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이 밤새 술값 걱정 없이 청춘을 얘기하기 좋은 거리였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서울대 주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샤로수길이라는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샤로수길에 퓨전 이탈리안 레스토랑 ‘모힝’을 낸 박태균(31) 대표는 “강남에서 직장을 다니는 3040 직장인이 이 근처에 많이 산다”고 말했다. 월세가 저렴한 서울대입구역 근처 빌라촌에 거주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청담동이나 가로수길에서 외식을 즐긴다. 박 대표는 “이 동네에 그들의 수준을 만족시켜줄 만한 맛집이 생기면 경쟁력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모힝을 시작으로 2~3년 전부터 샤로수길에는 하나둘 ‘강남 스타일’의 맛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비스트로, 심야식당, 수제버거, 핸드드립 카페가 생겨났다.
샤로수길 끝에 위치한 카페 ‘벙커 컴퍼니’ 박승규 대표는 “이 집 커피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대학생이나 인근 주민들 외에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다”며 “제대로 된 맛집이라면 사람들은 어떤 동네든 찾아간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관악구청 홍보전산과 신현준 과장은 지난 3년간 이런 변화를 지켜봤다.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 같은 곳이 동네에 있으면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기존 상권까지 탄력을 받게 돼 있어요. 샤로수길이 꿈틀댈 때 구청 입장에서는 그 변화가 참 고마웠지요.” 신 과장의 설명이다. 구청은 지난해 샤로수길의 뜻을 설명하는 간판을 달고 샤로수길 바닥에 거리 이름도 새겨 넣었다.
30도를 웃돌았던 지난달 23일 오후 2시. 샤로수길은 한산했다. SNS에서는 이미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 못지않게 ‘핫’한 동네로 소문이 났지만, 행인조차 뜸한 이 거리가 정말 샤로수길이 맞는지 의아해졌다. 골목 초입에 위치한 부동산 관계자는 “저녁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손님들이 밤에 주로 찾는 심야식당, 이자카야, 비스트로가 많은 거리라 낮에는 ‘별 볼 일 없는 주택가’라는 거다.
24일 오후 6시. 거리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달라졌다. 샤로수길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가게 주인들은 문을 열고 조명을 켰다. 아직 햇살이 남아 있었지만 상관없는 듯했다. 낮에는 밥집, 신발 가게, 호프집, 노래방만 눈에 들어왔던 허름한 골목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스페인 타파스부터 칠레 스테이크까지
샤로수길은 걸어서 둘러보는 데 15분이면 충분하다. 초입부터 끝까지 천천히 산책하듯 둘러보고 어디서 뭘 먹을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 이 길의 시작은 지하 1층에 위치한 스페인식 타파스 레스토랑 ‘모즈 타파스 라운지’와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와인 파는 퓨전 레스토랑 모힝이다. 바로 그 옆에 프랑스식 홍합찜을 파는 ‘프랑스홍합찜’과 칠레식 스테이크, 우루과이식 햄버거 등 남미의 술과 음식을 파는 ‘수다메리까’가 같은 건물 1층에 나란히 있다. 지하에는 커리나 나베 같은 아시아식 안주를 곁들여 술을 마실 수 있는 ‘봉천예술관’이라는 소주 펍이 있다. 널찍한 실내에 화려한 가구와 소품이 있어 딱 보면 ‘예술가들의 놀이터’ 같은 분위기다. 같은 건물 2층에는 미국식 브런치를 파는 ‘루트 66’이 있다. 여기서는 미국 남부에서 파는 전통 요리도 맛볼 수 있다.
그다음 블록에 있는 ‘낭만싸롱’은 색색의 나뭇조각을 이어 붙인 유쾌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비비빅 맥주’ ‘꿈틀 맥주’ 같은 재미있는 이름의 술도 있다. 태국 음식을 파는 ‘방콕야시장’을 지나면 ‘뚜레쥬르’ 빵집을 기점으로 낙성대시장길로 진입한다. 이곳의 샐러드 전문 식당 ‘스윗밸런스’ 장지만 대표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낙성대시장은 샤로수길에 포함되지 않는 시장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빨간 차양을 두르고 빨간 창문을 낸 맥줏집 ‘콩 펍’, 돌판에 구운 스테이크를 파는 ‘샤로스톤’, 심야식당 ‘키요이’, 수제버거를 파는 ‘더 멜팅팟’이 1~2년 새 생겨나며 길이 확장됐다. 이 길에는 태국식 숯불 바비큐 치킨을 파는 ‘반까이양 55’, 샐러드 전문점 ‘스윗밸런스’, 오믈렛을 파는 카페 같은 가게 ‘에그썸’이 있다.
24일 저녁 더 멜팅팟을 찾은 인근 주민 김은진(22)씨는 “주말이 되면 가로수길이나 이태원에 갔는데 요즘은 다른 동네 가지 않아도 된다”며 “다른 동네 사는 친구들이 샤로수길 어디가 맛있느냐고 물어보는 문자를 보내오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2년 새 상가권리금 2~3배로 뛰어
샤로수길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스윗밸런스를 기점으로 한 블록 남쪽으로 내려가면 제주도식 고기국수를 파는 ‘제주상회’, 예약제로 운영하는 고깃집 ‘제주솥뚜껑삼겹살’, 연어 요리를 파는 ‘연미랑’, 수제버거집 ‘나인온스’, 핸드드립 카페 ‘카페산다’, 로스팅 카페 벙커 컴퍼니가 밀집해 있다.
샤로수길에 위치한 한 부동산 중개소 관계자는 “2~3년 전만 해도 초입 쪽 권리금은 2000만~3000만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2~3배로 뛰었다”고 말했다. 아직 낙성대시장 안쪽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속도라면 샤로수길 전체가 비싸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벙커컴퍼니 박승규 대표는 “잠깐 반짝하고 떴다 지는 동네가 아니라 서울대생과 주민, 외부 사람이 맛과 분위기 때문에 찾아오는 진짜 동네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Tip 샤로수길 주변 즐기기
○즐길거리: 서울대 학생이 아니라면 근처 서울대 캠퍼스를 천천히 걸으면서 산책하는 것도 색다른 데이트가 될 수 있다. 서울대입구역 4번 출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을 샤로수길에서 먹는 게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주차: 아직 제대로 된 공영주차장은 없다. 관악구청에 유료주차하는 게 가장 저렴하고 편하다.
○피하면 좋은 날: 월요일엔 가게 대부분이 문을 닫는다. 오후 5시까지는 한산하다. 저녁 시간 이후 가면 북적이는 샤로수길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샤로수길 대표 맛집
벙커 컴퍼니
피아의 원두를 주로 쓴다.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산미를 잘 살려 커피를 내린다. 보통은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는 브루잉(Brewing) 커피도 이곳에서는 원두 고유의 유질감을 살리기 위해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저압으로추출한다.
○ 대표 메뉴 :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5000원, 에스프레소와 롱블랙 커피 5000원
○ 영업시간 : 오전 10시~오후6시
○ 전화번호 : 070-4696-1500
○ 주소 : 관악구 관악로12길 105
○ 주차 : 불가
모힝
○ 대표 메뉴 : 지글지글 게살파스타 1만4000원, 비프 플랫브래드 2만3000원
○ 영업시간 : 오전 11시~새벽 1시
○ 전화번호 : 02-873-5164
○ 주소 : 관악구 남부순환로226길 36
○ 주차 : 불가
스윗밸런스
채소로만 구성한 샐러드 ‘비건 볼’,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조화를 고려해 구성한 ‘밸런스 볼’, 여성들이 좋아하는 리코타 치즈나 과일 등 달콤한 재료로 만든 ‘스윗 볼’ 등 선택의 폭이 넓다. ‘찰떡궁합’ ‘멕시코남자 파리여자’ 같은 특이한 이름의 샐러드도 있다. 해독 주스는 케일·당근·사과·비트 등 신선한 재료로 만든다. 비트를 넣은 ‘눈동자 키스’, 사과와 시금치를 넣은 ‘녹색의 시작’ 같은 주스가 인기다.
○ 대표 메뉴 : 된장남 샐러드 8500원, 찰떡궁합 샐러드 9500원
○ 영업시간 : 오전 10시30분~오후 9시
○ 전화번호 : 02-883-3225
○ 주소 : 관악구 봉천동 1620-27
○ 주차 : 가게 앞 1대
라멘남
인 돈코츠라멘이다. 돼지 뼈를 오래 우려 진하고 깊은 국물을 내는 게 돈코츠라멘의 특징이다. 아삭한 숙주나물과 짭조름하고 쫄깃한 차슈, 시원한 파가 듬뿍 올려진 라멘이다.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간장 국물 베이스인 소유 라멘을 많이 찾는다. 라멘에 아사히 생맥주를 포함한 세트 메뉴도 있다.
○ 대표 메뉴 : 돈코츠라멘 6000원, 소유라멘 6000원, 돈코츠 미소라멘 7000원
○ 영업시간 :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 02-871-6484
○ 주소 : 관악구 관악로14길 101
○ 주차 : 불가
수다메리까
온 뒤 각각의 나라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골라 이곳의 메뉴를 구성했다. 스지 토마토 소스 파스타, 남미식 고기만두 엠빠나다, 우루과이식 햄버거가 대표 메뉴다. 바르셀로나 맥주 ‘볼담’, 페루의 ‘잉카콜라’, 남미 전통 차‘마떼’, 차가운 마떼 ‘떼레레’ 등 이색 음료가 많다. 독특
한 콘셉트라 방문했다가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잘 맞는 남미 음식에 반해 단골이 된 손님도 많다.
○ 대표 메뉴 : 스지 토마토 소스 파스타 1만5000원, 남미식 고기만두 엠빠나다 1만2000원 ○ 영업시간 : 오후 5시~오후 12시, 매주 화요일, 둘째·넷째주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 070-4521-9421
○ 주소 : 관악구 관악로14길 22
○ 주차 : 불가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nag.co.kr
[맛있는 지도]
▶모던이냐 클래식이냐, 청담동서 펼쳐지는 도산대로 한식 대전
▶한적한 은행나무 언덕에 소문난 맛집들, 서래마을 함지박길
▶대치동 엄마들이 인정한 맛있는 지하세계, 은마 지하상가
▶해방촌, 외국인들은 HBC라 부르는 곳, 남산 아래 세계의 맛
▶“인스타그램 사진 보고 왔어요” 경리단길 못지않은 ‘망리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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