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최남단 관악산 골짜기에 자리해 여간해선 올 일 없는 서울대.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학교가 어딨나 두리번거리는 실수 한 번쯤은 겪는다던가. 5분쯤 기다려 셔틀버스를 타고 정문을 지나 본부까지 한참 들어가도 전체 넓이가 잘 짐작되지 않는다. 이곳에 학생 및 교직원 3만여 명이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러한 서울대 역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에 맞게 변화해 왔다. 20년 전에 서울대를 졸업한 기자가 캠퍼스의 변화상을 추적해 봤다. 체육교육과 재학 중인 남녀 선후배로 급조한 ‘가상 커플’의 안내를 받아 관악 캠퍼스를 누볐다. 먼저 커플의 알콩달콩 캠퍼스 데이트부터 감상해 보자.
#정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도 버스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서울대가 나온다. '서울대'라 하면 역시 열쇠 모양의 정문이다. ‘국립서울대’의 머릿글자인 ㄱ, ㅅ, ㄷ의 형상을 본떴지만 흔히 ‘샤’라고 부른다.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가 적힌 엠블렘과 함께 서울대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정문 색깔은 늘 비슷한 청회색빛인 듯 하지만 실은 페인트칠을 새로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90년대 후반에 '샤'를 황토색으로 칠한 적이 있었는데, 96학번 이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선우중호 서울대 총장이 딸의 불법 고액과외로 불명예 퇴진하자 "교문에 똥칠을 하니 학교가 이런 망신을 당하지"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기도 했단다.
#서울대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나
서울대 캠퍼스는 원래 동숭동에 있었다. 지금도 의대와 서울대병원이 거기에 있다. 75년 이곳 관악으로 이사했다. 서울대생들이 대학로와 마로니에 공원에서 하도 데모를 해 군사정부가 산골로 몰아넣었다는 설이 있다고 정희성(국문과 64학번) 시인은 회고했다.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기공식 축사를 쓴 분이다. 초창기 건물들은 군대 막사 스타일이라는 혹평도 있었지만 캠퍼스를 품은 관악산의 풍광만큼은 일품이다.
#아크로폴리스
대학본부와 중앙도서관 사이에 경사진 계단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학생들이 계단에 앉아 집회를 자주 열던 곳이라 ‘아크로폴리스’라 불린다. 옆 학생회관 벽에는 빼곡히 붙은 대자보와 결기에 가득 찬 문구의 플래 카드가 바람에 날리곤 해 엄숙한 느낌마저 풍겼던 곳이다. 지금은 미대생들이 귀여운 그림을 벤치에 그려놓아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다.
#도서관
#자하연(紫霞淵)
자주빛 안개가 내리는 연못이란 이름은 이 일대의 옛 지명인 자하동천(紫霞洞天)에서 유래한다. 배우 김태희(의류학과 99학번)가 재학 시절 가끔 출몰해 벤치에 앉아 있었다는 제보가 많다.
#서울대의 먹거리
1. 자하벅스
2. 학생회관 1000원 학식
학생회관의 1000원짜리 학식도 반응이 좋아 아침에만 제공하던 것을 최근 저녁까지 확대했다. 동행한 윤서영(체육교육과 14학번) 학생은 “가성비가 괜찮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각종 학식은 지역 주민이나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3. 서울대 카페 '이야기'
신축 로스쿨 건물에 입점한 ‘이야기’는 캠퍼스 내 상점 중 보기 드물게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매니저 백송이 씨는 “장식한 소품들을 손수 만들어 학생들이 좋아한다”면서 “동아리나 축제 영상을 촬영하러 많이 온다”고 밝혔다. 이제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도 빈 강의실을 전전할 필요가 없겠다.
#걷고 싶은 길
가로수와 바닥 등을 새로 단장한 ‘걷고 싶은 길’이 예대를 지나 경영대까지 이어진다. 벚꽃이 한창일 때는 길가에 띄엄띄엄 박아 놓은 조명등과 어우러져 어둑어둑할 때 더욱 운치 있다고 한다. 정문에서 왼쪽 순환도로를 따라 산중턱의 잔디밭 버들골로 올라가는 길도 산책하기 좋은 코스다. 요즘 같은 날씨가 버들골에 누워 사색을 즐기기에 가장 적합하다.
#마켓인유
#미술관(MoA)
#20년 전엔 드물었던 기업 후원 건물
20년 전에는 SK 경영관 구관(1990년 10월 개관), 동원관(1996년 12월 개관) 정도가 기업 기부로 설립됐을 뿐 이런 건물이 몇 없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학 내 반기업 정서도 거센 편이었다.
건물에 붙은 큼지막한 기업 로고를 가리키며 재학생들의 반응을 묻자 동행한 심재운(체육교육과 11학번) 학생은 “나쁘게 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고마워하지도 않는 듯하다”면서 “사실 뭘 하는 곳인지 학부생들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어 “가끔 해당 기업의 채용 설명회를 여는 걸 봤다”고 덧붙였다. 기부 덕분에 살림이 나아진 서울대가 나라 살림을 키울 인재로 갚는다면 선순환이 될까? 시인의 말이 허세가 아니길….
캠퍼스 안내 | 서울대 체육교육과 3학년 윤서영·심재운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영상=전민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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