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판사보다 무단횡단에 엄격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6.05.24 02:53

수정 2016.05.2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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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차로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교통사고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택시운전기사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비슷한 사건을 다룬 일반 형사재판에서는 대부분 유죄가 선고돼 왔던 것과 차이가 나는 결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김진동)는 최근 택시 기사 A씨(75)가 무단횡단 사망사고를 낸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4월 낮 서울 강남구의 편도 3차선 도로 1차로에서 무단횡단하던 보행자 B씨(61·여)를 들이받아 숨지게 했다.

보행자 숨지게 한 운전자
국민참여재판서 잇단 무죄
판사 재판선 올해 무죄 5%뿐

배심원들은 “A씨는 시속 68㎞(제한속도 70㎞)로 운행했고 사고 도로 주변에 횡단보도가 없었으며 무단횡단을 막기 위한 울타리까지 있었다. 운전자 입장에서 보행자가 건널 것을 예상하기 어려웠던 만큼 과실이 없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냈다.

지난해 말 왕복 11차선 교차로를 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국민참여재판을 받은 회사원 C씨(46) 역시 배심원 전원 일치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심원들은 “보행자가 6개 차로와 중앙선까지 넘어 C씨가 주행하던 2차로에서 사고를 당했다”며 “C씨보다 보행자의 잘못이 크다”고 판단했다.

참여재판은 7~9명의 시민 배심원이 유무죄와 양형 의견을 제시하면 법관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법원 관계자는 “비슷한 사안에서 주로 유죄 판결을 해 왔던 법관들 사이에선 이례적 결과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1월부터 이달 23일까지 전국 법원의 무단횡단 사망사고 관련 판결 147건 중에선 금고형(집행유예 포함)이 93건(63.2%)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이 41건(27.8%)으로 뒤를 이었다. 무죄는 8건(5.4%)에 불과했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참여재판에선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시각이 반영된다”고 말했다.

이유정·정혁준 기자 uu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