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구조조정 문제를 세상에 공개하기도 전에 해양·조선 분야의 많은 중소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이미 구조조정의 태풍을 맞았다. 그래서 최근의 대기업 구조조정 기조는 이익이 나면 기업 것이고 손실이 발생하면 사회가 부담하는 전형적인 ‘기업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로 이해된다. 어쨌든 해양·조선 분야는 국책은행이 이미 깊숙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정부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최대한 빠르게’ 구조조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론 정부 개입에 의한 대기업 살리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산업·수출입은행의 자회사들이 직면한 상황이 잘 보여주듯 정부는 구조조정 전문가가 아니다. 또한 그런 낡은 방식을 되풀이해도 될 만큼 국내외 경제 환경이 녹록지도 않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경영 상황이 불안한 기업들이 해운·조선업뿐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있다. 상장사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차입금 이자도 못 내는 상태(이자보상배율 1.0 미만)가 3년 이상 지속된 한계기업의 비중은 2009년 25.8%에서 2015년 상반기에는 33.3%로 증가했다. 또한 만성적 한계기업 비중도 2009년 8.2%에서 2014년 10.6%로 상승했다. 더욱이 30대 그룹 중 17개가 부실 또는 부실 징후를 보일 정도로 재벌그룹 대기업의 한계기업 비중도 커지고 있다. 이것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해양·조선 분야를 넘어 모든 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둘째, 대-중소기업 관계의 단절로 대기업 회생이 중소기업 회생으로 즉각 연결되기 어렵다. 오히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용을 전가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셋째, 가계부채발 경제위기가 우려된다.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는 데다 부채 상환 능력마저 취약하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글로벌 위기 직전인 2007년 말 140.5%에서 2015년 말 169.9%로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2014년 말 평균치인 134.4%를 훌쩍 넘었다. 넷째, 기술과 조직 혁신에 의한 생산성의 획기적 증가가 없는 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다. 출생률 저하와 급속한 고령화 진행으로 2017년엔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2020년부터는 인구절벽이 예측되는 등 노동인력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자본 요소의 증가마저 제한받을 것이다.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서도 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은 정상기업과 아예 투자 여력이 없는 한계기업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 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출 증대에 의한 경제 회복도 쉽지 않다. 끝으로 정부 주도 구조조정은 무역분쟁을 야기하는 등 많은 제약에 부닥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개방화·세계화로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국내외에 널리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 더 보태자면, 정부는 ‘최종대부자’이어야 할 한국은행의 팔을 비틀어 ‘최초대부자’이기를 강요하는 모습이다. 안 될 일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구태에서 벗어나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협치해야 한다. 그것이 4·13총선 결과의 요구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