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의 교육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부모를 이르는 ‘헬리콥터맘’의 활동반경이 점점 늘어간다. 과거에는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서 볼 수 있는 치맛바람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자녀의 대학생활과 군대, 결혼생활까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부모들이 등장했다. 이미 성인이 된 자녀의 삶을 직접 관리해주는 매니저 역할을 자임하는 부모다.
얼마 후 A씨의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학부모 총회의 초대장이었다. 초대장을 받은 A씨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학부모회에서 기부금을 모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의대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부금을 내는 분위기의 학교와 안 내도 상관없는 분위기의 학교로 나뉘었다. 아무래도 6년이나 학교를 다녀야 하고, 실습도 학교 부속 병원에서 하기 마련이니 무시하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고민 끝에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A씨는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A씨의 경우처럼 몇몇 의대는 학부모 총회를 개최한다. 유명 사립대 O대 의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말 열린 학부모총회에는 의예과, 의학과 학부모 100여 명이 참석했다. 총회에서 대놓고 학부모들에게 기부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저 의대의 역사와 미래를 이야기하며 “위 건물들은 학교와 교직원, 학부모의 모금으로 설립됐다”고 소개하고, 총회 자료집에 학생의 이름·학번·학과·학년·기부금액·기부일을 모두 기재해 기부 현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을 뿐이다. 자료집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학부모 기부금은 114건, 3800만원이 모였고 건축기금으로 39건, 1억3600만원이 약정된 상태다.
대학에 학부모회 생긴 건 이미 오래된 일
학부모회는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교수들에게 자녀 학업과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얻는다. O대 의대 학부모회 회장 이모 씨는 대의원회 가입을 권유하며 “교수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고, 선배 학부모들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교수들에게 학과 커리큘럼과 성적 처리방식에 대해 물으며 자녀들의 학교생활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에 대해 대학 관계자는 “10% 정도의 학생은 입시가 끝났다는 해방감에 너무 풀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학부모들이 대입입시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관리를 해주셔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대학생 자녀 역시 학부모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다.
학생회가 자율적으로 새터(새내기 새로배움터)를 진행하는 다른 단과대와 달리, 의과대의 경우 교수진이 이를 주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학 의과대에 다니는 B씨는 “학생 자치의 개념이 학생 사이에서 많이 약화된 게 사실”이라며 “학부모회가 사실상의 친교단체인데, 나중에는 학부모의 친교에 따라 학생들의 친교가 결정되는 역전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학부모 중에는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분이 많은데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까지 제약하는 결과를 낳게 돼 아쉽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녀들의 대학생활에 관여하는 부모들이 의과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최근 서울의 E여대가 ‘학부모 포털’을 개설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대학이 학부모 전용 포털을 개설한 것은 처음이다. 학부모가 사이트에서 가입신청을 하면 학생의 기본정보와 학교 행사 안내, 학부모 건의사항 등을 열람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성적과 장학내역은 학생 동의가 있어야 공개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학생의 자율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 대학 4학년 이예니(24) 씨는 “학부모 포털 신설은 20세가 넘은 대학생들의 자율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부작용을 우려했다. 물론 대학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이 대학의 관계자는 “대학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문의하는 학부모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요즘 대학들은 행정실을 직접 찾거나 전화를 걸어 자녀들의 대학생활을 묻거나 상담하는 학부모들로 몸살을 앓는다.
Y대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는 C씨는 “학부모들이 사무실에 너무 많이 찾아온다”며 고개를 저었다. “학생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버지가 자녀와 함께 찾아와 프로그램 상담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봐요. 이메일로 문의해도 전부 답장을 해주는데 굳이 부모님까지 동원하는 학생들을 이해할 수 없죠.”
C씨는 “더 심한 일도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한 어머니가 찾아와서 우리 아이가 한 과목만 수강하면 수료할 수 있는데 허락해달라고 떼를 쓰는 거예요. 규정상 어렵다고 거절을 했더니 윗분들에게 민원을 걸어서 난처했어요. 요즘은 부모가 대학생 자녀의 커리큘럼을 짜는 것까지 관여하나 싶어 놀랐어요.”
군부대에 “내 아들 시험준비 잘하느냐” 황당전화
대학뿐만이 아니다. 자녀의 군입대와 군생활에 관여하는 부모도 눈에 띄게 늘었다. 요즘 병무청에는 “우리 아들이 왜 군입대에서 누락됐느냐”를 따져 묻는 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 시험과 면접을 거쳐 인원을 뽑는 의경 모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 한 지방경찰청 의무경찰계에서 복무했던 D씨는 부모님들의 전화를 받는 일이 악몽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하루에 100통 가까운 전화를 받았어요. 접수 마감 직전에는 더했고요. 한 어머니는 저에게 의경인지, 어떻게 붙었는지, 어느 학교인지, 그것이 어떻게 영향을 준 것 같은지, 팁을 준다면 어떤 게 있는지를 몇 시간에 걸쳐 전화상으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관련정보를 정리해서 나눠주게 될 정도가 됐어요.”
부모들이 군대에까지 관심을 쏟고, 민원을 내게 된 데는 병영 내에서 이어진 사고들도 한몫을 했다. ‘윤일병 가혹행위 사건’,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 같은 군 가혹행위 사건들이 연이어 보도되다 보니 부모들의 불안과 불신감이 높아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이옥자(51) 씨는 두 달에 한 번 3박 4일씩 집을 비운다. 완도 근처 섬에서 군생활을 하는 아들을 보러 가기 위해서다. “당연히 힘들죠. 서울에서 완도까지 가는 데 하루, 완도에서 부대로 들어가는 데 또 하루가 걸리니까요. 그렇지만 아이는 외딴섬에 배치돼 힘들어 하는데 뉴스에서는 군 가혹행위 문제가 계속 터져나오니까 불안해서 안 가볼 수가 없더라고요.”
자녀 모르게 결혼정보회사 가입하는 부모
‘결혼은 가족과 가족이 만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당사자끼리만 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결혼의 결정, 진행 주체는 결혼 당사자인 남녀가 돼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자녀의 결혼에 자녀들보다 더 주도적으로 나서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극단적인 사례는 대리 맞선이다. 기존 맞선이 결혼 당사자인 남녀가 만나는 것이라면, 대리 맞선은 당사자들 몰래 부모가 먼저 만나는 경우다. 대리 맞선에서는 양가 부모가 서로 조건을 따져보고 혼수나 집 장만할 때 비용 분담까지 논의한다고 한다. 부모끼리 의견이 맞으면 그제서야 자녀들에게 소개해 만남을 추진한다. 이제는 자녀의 결혼 상대마저 부모가 나서서 고르는 셈이다. 방배결혼정보회사 대표 차일호 씨는 “부모가 대신 등록하는 경우도 많고 요즘은 등록하는 10명 중 2명꼴로 대리 맞선을 본다”고 말했다.
서강대 전상진 교수는 이런 현상을 ‘사랑의 재봉건화’라고 설명했다. 산업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사회가 불안해지자 계급을 상속하려는 욕구가 커졌다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보다 잘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결혼에서도 계급 내 혼인을 선호합니다. 쉽게 말해 조건을 더 따져보게 되는 거죠. 조건이 선행된 뒤에 사랑이 충족되면 결혼한다는 얘기니까요. 사랑에서도 재봉건화가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국가와 국경을 뛰어넘는 낭만적 사랑은 이미 끝난 게 아닐까요?”
결혼정보업체들은 이런 추세를 반영해 부모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대표이사 박수경 씨는 몇 년 전부터 전국을 돌며 ‘자녀결혼전략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매번 적게는 20명, 많게는 100명의 부모가 참석해 메모해가며 박씨 말을 경청한다. 박 씨는 설명회에서 자녀를 결혼시키려면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선택과 집중’을 통해 배우자를 고르라고 조언한다. 배우자 선택의 주체가 자녀에서 부모로 넘어가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자녀 과잉보호는 부모의 불안, 공포감의 소산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로부터 독립해 어른으로 홀로 선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는지도 모른다. 수명이 12~18년이라는 캥거루도 어미의 주머니 속에서 자라는 건 6개월밖에 안된다고 한다. 우리는 인생의 5분의 1 이상을 부모 품에서 보내는 셈이니, 캥거루들은 오히려 억울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학부터 군대, 취업, 결혼까지 매니저를 자처하는 부모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녀를 대신해 동분서주한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녀의 미래가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누구의 것인지 곱씹어 볼 때다.
- 민선희 인턴기자 minssun_@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