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은 이달 초순 캘리포니아 해안선을 따라 노스 코스트와 센트럴 코스트의 와이너리를 찾아다녔다. 태양과 바다가 빚어낸 풍미와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도전 정신이 녹아든 와인에 흠뻑 취했다.
“포도나무는 산에 자라는 야생동물이에요. 일교차가 크고, 배수가 잘 되는 땅의 특성이 그대로 와인에 살아납니다. 척박한 땅에서 익은 와인일수록 더 풍부한 맛과 향을 내죠.”
JFW의 와인 해설사 페드로 러스크(44)가 산간 지방 포도밭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JFW는 캘리포니아에만 면적 41㎢에 달하는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는데, 주력 품종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샤르도네(Chardonnay)다. 미국 산업과학연구소(IRI)에 따르면, JFW가 샤르도네로 만든 화이트 와인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Vintner’s Reserve Chardonnay)’는 82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화이트 와인이었다.
러스크는 건물 뒤편 정원으로 먼저 안내했다. 정원은 약 600㎡ 크기였는데, 화이트 와인 4종과 레드 와인 4종을 주제로 조성한 것이 독특했다. 떨떠름한 맛이 나는 레드 와인 품종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섹션에는 감나무와 담배가, 신 맛이 나는 피노 누아(Piot Noir) 섹션에는 라즈베리와 자두나무가 보였다. 러스크는 “후각과 미각을 깨우고 나면 와인 맛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와이너리에서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맞추는 푸드페어링(Foodpairing) 프로그램도 체험했다.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난 던저니스 크랩(Dungeness crab)을 넣은 샐러드에는 샤르도네 와인이, 캘리포니아에서 키운 오리의 가슴살로 만든 스테이크에는 피노 누아 와인이 매칭됐다. 캘리포니아의 육·해·공을 맛보는 셈이었다.
“해산물은 화이트 와인, 육류는 레드 와인이라는 공식이 꼭 맞는 것은 아니에요.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피노 누아 와인이 해산물과 어울릴 수도 있고, 오크통에 숙성시킨 농후한 샤르도네는 육류와 결합되기도 해요. 와인을 대하는 첫 번째 원칙은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JFW 저스틴 웽글러(40) 셰프의 추천에 따라 해산물과 레드 와인, 육류와 화이트 와인 조합을 시험해 봤다. 가볍고 시큼한 피노 누아는 크랩 맛을 돋아줬고, 묵직한 샤르도네는 스테이크와 부딪히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와이너리 투어는 관습이나 규칙을 박차는 여정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6대 4 비율로 생산된다. 캘리포니아의 레드 와인 품종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카베르네 쇼비뇽이다. 껍질이 두꺼운 카베르네 쇼비뇽은 캘리포니아에 빠르게 뿌리내렸지만 껍질이 얇고 병치레가 잦은 피노 누아는 그렇지 못했다. 기후와 토질을 검토한 끝에 와인 제조업자는 몬터레이가 피노 누아 재배에 꼭 들어맞는 땅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몬터레이에 피노 누아가 집중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였다.
몬터레이 중심가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카멜 로드(Carmel Road)’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와이너리는 면적 2㎢ 의 포도밭 ‘파노라마 빈야드(Panorama Vineyard)’를 곁에 두고 있다. 와이너리는 9월께 포도를 수확해 ‘카멜 로드 피노 누아’ 와인을 빚는다.
바람이 불자 포도밭에 열 맞춰 심어진 포도나무가 일제히 연둣빛 잎사귀를 흔들었다. 태양이 내리쬐고 서늘한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카멜 로드 와이너리의 와인 메이커 크리스 카토(39)는 포도밭에 부는 바람을 두고 “센트럴 코스트의 천연 에어컨”이라고 소개했다.
“육지가 바다보다 뜨거워지는 오후 2시부터 해풍이 붑니다. 태평양에서 건너온 차가운 바닷바람이 포도나무를 식혀줍니다.”
‘전통’보다 ‘혁신’을 추구한다는 카멜 로드 와이너리는 포도 농사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하고 있었다. 포도밭 책임자 스콧 퀼티(43)는 “포도나무를 조밀하게 심는 실험을 전개 중”이라고 귀띔했다.
“포도나무가 붙어 자라면 나무에 맺히는 포도 송이 개수가 줄어듭니다. 대신 나무는 열매 하나하나에 에너지를 집중하게 돼요. 그 열매로 와인을 만들면 풍미가 탁월하지요.”
캘리포니아 최고의 피노 누아 와인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두 젊은 장인의 이야기에 빠져서인지 ‘카멜 로드 피노 누아’에서는 바람의 맛이 났다. 와인은 가벼운 바람처럼 목구멍을 타고 사라졌다. 대신 짙은 과일 향만 입가에 오래 머물렀다.
아쉽게도 카멜 로드 와이너리는 일반인의 방문을 제한했다. 대신 와이너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소도시 카멜(Carmel)에 카멜 로드 와이너리 시음장이 있었다. 시음장에는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20여 종의 와인이 준비돼 있었다.
다섯 종류의 피노 누아 와인을 시음해 봤다. 와인에 문외한이기도 하고, 품종까지 같으니 와인 맛은 거기에서 거기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나 둔감한 코에도, 와인이 익숙잖은 혀에도 차이가 느껴졌다. 포도밭 남쪽에서 수확했느냐 북쪽에서 수확했느냐에 따라 향이 갈렸다. 파노라마 빈야드가 아닌 포도밭에서 가꾼 포도를 블렌딩 한 와인은 또 달랐다. 꿀떡꿀떡 마시는데 급급했던 와인을 어느덧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고 있었다.
●여행정보=캘리포니아 와인 여행은 샌프란시스코를 기점으로 하는 게 좋다. 샌프란시스코를 기준으로 북쪽이 노스 코스트, 남쪽이 센트럴 코스트로 갈린다. 샌타로사에 와인 제조사 잭슨패밀리와인(kj.com)이 운영하는 와이너리 ‘캔달잭슨 와인 이스테이트 앤 가든’이 있다. 와인과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는 푸드페어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1인 40달러(약 4만7000원).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받는다.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카멜에 카멜 로드(Carmelroad.com)의 와인 시음장 ‘카멜 로드 테이스팅 룸’이 있다. 1인 15달러(약 1만7000원)를 내면 와인 5잔을 마실 수 있다. 운영시간 낮 12시~오후 7시. 카멜 로드 피노 누아(3만원 대),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2만원 대)는 국내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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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