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자취 서린 대구, 그의 문학관 없어 안타까웠죠”

중앙일보

입력 2016.05.19 00:44

수정 2016.05.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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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교수는 20년 전 석사학위 논문으로 이육사의 시 세계를 연구하다 그에게 매료됐다고 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는 청년기를 대구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경북대 박현수(50·국문학과) 교수가 ‘264 작은 문학관’을 만든 이유다. 박 교수는 18일 대구시 중구 대안동에 문학관을 열었다. 이육사 문학관은 이육사의 고향 안동에 이어 두 번째다.

‘264 작은 문학관’ 만든 박현수 교수
사재 3억 털어 2층짜리 전시실 꾸며
“육사의 큰뜻 알리는 교육장 만들 것”

박 교수는 2005년 경북대에 부임하면서 문학관을 구상했다. 하지만 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낡은 한옥이 나오자 덥석 잡았다고 한다.

작은 한옥을 개조해 1층은 기획전시실, 2층은 상설전시실으로 꾸몄다. 연면적 100㎡의 ‘작은’ 문학관이다. ‘264’는 이육사가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구금됐을 때 수인번호다. 상설전시실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됐을 때 사진과 ‘광야’ ‘청포도’ 등 그의 시, 유고시집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 건립에는 3억원이 들었다. 대구 중구청에서 지원받은 4000만원을 제외하곤 국어교사인 형 광수(53)씨와 박 교수가 절반씩 부담했다.

박 교수가 이육사와 인연을 맺은 건 20년 전이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그의 시 세계를 연구했다. 논문 제목은 ‘육사 시에 끼친 주자학적 영향’이었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모두 44편의 시(한시 포함)를 남겼다.


박 교수는 논문을 쓰기 위해 안동·대구·부산 등 육사의 고향과 친척들이 사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그의 삶에 매료됐다고 한다. 육사는 1904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나 16세 때 대구로 이사했다. 이후 37년 서울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대구에서 생활했다. 독립운동을 하다 수차례 투옥됐으며 44년 베이징의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본명은 원록. 박 교수는 “젊은 날 이육사가 품었던 큰 뜻을 알리는 교육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