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화는 대체로 풍속화의 지류로 소개돼 왔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문화전’ 제 6부 ‘풍속인물화-일상, 꿈 그리고 풍류’(8월 28일까지)에도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등 춘의풍속도(春意風俗圖) 몇 점이 나왔다.
18세기 후반에 특히 풍성한 생산성을 보인 풍속화 경향은 당대의 난만한 현실 의식을 보여준다. 화원(畵員) 선발에 각별했던 정조대왕은 풍속화 문제를 출제하며 “모두 보자마자 껄껄 웃을만한 그림으로 그려라”고 특별히 지시할 정도였다.
주인공은 매 장면 거의 동일 인물로 보여 지며 그림마다 다른 체위가 섬세하게 묘사됐다. 양반 가문에서 교육용으로 주문 제작한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화첩이 미술사가의 눈길을 끄는 이유는 정작 남녀상열지사의 몸짓이 아니라 배경 때문이다. 농염한 행위가 이뤄지는 방과 실내를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그림과 기물이 오히려 이 그림을 그린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게 빼어나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등 내로라하는 명품을 연상시키고, 색색 도자기와 장식품은 중국과 일본을 망라해 국제적이다.
화첩을 연구한 홍선표 한국미술연구소 이사장은 “실내장식의 배치나 기물로 볼 때 19세기 후반에 보여 지는 유흥 풍조로, 시각적이나 장식적인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한국 회화사의 중요작”이라고 평가했다. 홍 이사장은 “총 30면으로 구성돼 조선시대 춘화 화첩 중 면수가 가장 많은데다 그림마다 당시 성풍속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모티브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낙관이 없는 이 춘화를 그린 이는 누구일까. 의견은 엇갈린다. 홍 이사장은 이한철(1812~1893 이후)로 추정되는 조선말기 화원을 지목했다. 이원복 전 경기도박물관장은 동 시대 화원을 지낸 백은배(1820~1901)를 꼽았다. ‘간송문화전’에는 이한철의 ‘반의헌준(색동옷 입고 잔을 올리다)’과 백은배의 ‘탄금야흥(거문고를 뜯는 들놀이 흥취)’이 전시되고 있다. 과연 누가 이 아름다운 춘화를 그렸을까.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