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철
논설위원
이 재단은 2009년 2학기부터 매년 2조원 꼴로 총 16조원을 대출했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으로 2012년 시작된 무상 지원 ‘국가장학금’과는 별개다. 학비를 대기 어렵거나 생활비가 부족한 학생 40만 명이 해마다 이용한다. 인기의 비결은 금리다.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1.5%)에 1.2%포인트를 가산한 연 2.7%다. 취업한 뒤 나눠 갚으면 되니 상환 부담도 적다.
대학생 대출에서 은행 빼니 금리·비용 낮아져
보육·청년 복지도 직접 전달 확대 검토해야
미국도 2010년 비슷한 개혁을 했다. 정부의 직접 대출과 은행을 통한 간접 대출을 병행하다 간접 대출을 없앴다. 학자금 대출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까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은 주택대출 다음으로 많다. 총액이 1조3000억 달러로 자동차 할부나 신용카드 빚을 넘어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체율이 치솟으며 다음에 터질 ‘시한폭탄’으로까지 지목됐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는 한국처럼 은행이었다. 은행들은 정부 보증을 믿고 학생과 대학에 마음껏 마케팅 비용을 뿌렸다. 그 비용은 대출금리와 수수료로 학생 대출자에게 전가했다. 정부 부담도 훨씬 커졌다. 대출 100달러당 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이 직접 대출(20달러)보다 훨씬 높은 31달러에 달했다.
시장은 대개 정부보다 효율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가격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적절히 조절한다. 하지만 복지 영역에선 종종 그렇지 않다는 걸 한국과 미국의 학자금 대출이 보여준다. 은행 같은 대리인이 중간에 끼면서 전달 비용이 발생하는 탓이다.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도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하나쯤은 손에 쥐여줘야 하는 법이다.
현재 가장 뜨거운 복지 이슈는 보육과 청년 취업이다. 둘 다 정부가 수요자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를 맡기는 부모가 아니라 어린이집이 예산 지원을 받는다. 취업한 청년이 아니라 기업이 정부 보조금을 수령한다. 명분은 좋을지 몰라도 시장을 왜곡시키고 복지 체감도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수요자가 아닌 복지 전달자에 초점이 맞춰진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책에 쏟아부은 돈이 1조9800억원이다. 이 돈으로 만든 청년 일자리는 4만8000개다. 일자리 하나당 대기업 초임 연봉보다 많은 4125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 취업한 청년 대부분은 이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는다. 월급 200만원 이하가 허다하다. 정부 예산과 청년이 받아 쥔 봉급 사이의 차액이 전달 비용으로 날아갔다는 얘기다. 보육 정책도 마찬가지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지만 부모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 같은 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해결을 촉구하는 건 부모들이 아니라 어린이집·유치원 단체들이다. 뭔가 단단히 꼬여 있다.
복지정책은 수요자를 보고 해야 한다. 전달자를 먼저 염두에 두면 안 된다. 비용은 더 들고 효과는 떨어진다. 스님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꼴이다. 간접 전달에 치우진 지금의 복지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직접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장학재단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