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윤 2월 9일(음력) 오전 창덕궁 앞의 광경이다.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가 잠든 수원 화성 융릉까지 참배하기 위해 떠난 능행차(陵行次)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나오는 대목이다. 일반 병사들까지 합치면 대열 길이는 최장 1.5㎞나 됐다.
세계문화유산에 동시 등재 인연
서울·수원시 함께 10월 능행차 재현
2281명, 말 430필 동원해 퍼레이드
한강 노들섬 이어진 배다리도 설치
따라서 사실상 전 구간에 해당하는 창덕궁∼화성행궁 구간을 한꺼번에 재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7년 나란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각별한 인연이 있는 창덕궁과 수원화성이 이번 능행차를 통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화성행궁 도착 이후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는 ‘융릉제향’까지 재현할 지는 아직 미정인데 화성시와 전주이씨 종친회의 협조를 구하는 중이다.
조선시대에는 창덕궁~수원 이동에 이틀이 걸렸고, 수원에 나흘간 머물고, 다시 이틀이 걸려 창덕궁으로 돌아와 능행차에 모두 8일이 소요됐다. 이번에는 10월 8~9일 이틀간 창덕궁~화성행궁 여정이 서울과 수원 구간으로 나눠 재현된다.
우선 서울시 재현 담당 구간(20.6㎞)은 서울 창덕궁(종로구 와룡동)부터 시흥행궁(금천구 시흥동)까지다. 1231명이 투입되고 160필의 말이 동원된다. 행사날 오전 출발지인 서울 창덕궁에서 출궁(出宮)의식이 치러진다. 이때 정조의 신하들이 화성행궁으로 떠나는 정조를 알현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숭례문에서도 별도의 출성(出城)의식이 열린다. 이후 한강대교 쪽으로 5㎞를 이동해 한강 노들섬에 연결된 배다리(길이 300m·폭 20m)를 지난다. 나무와 철제 소재의 배다리는 행사 한 달 전인 9월쯤 설치된다. 이어 동작구 본동의 노량행궁을 지나 시흥행궁까지 12.3㎞를 행차한다.
수원 구간에서는 유커(중국인관광객)를 비롯한 국내외 관광객을 위한 이벤트가 마련된다. 정조가 지날 때 백성이 임금에게 민원 사항을 호소하기 위해 꽹과리를 치는 행동(‘격정’)을 연출한다. 또 임금이 각 지역에 진입할 때 지역 유수가 나와 마중하는 ‘정조맞이’도 보여준다. 능행차 곳곳에 백성들이 윷놀이 등을 즐기는 장면도 연출된다.
이번 능행차 재현은 박원순(60) 서울시장과 염태영(56) 수원시장이 모두 시민운동가 출신이란 인연 때문에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염 시장이 “반쪽짜리가 아닌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고 싶다”고 제안하자 박 시장이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두 시장은 다음달 22일 구체적인 능행차 재현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예산 13억원, 수원시는 16억원을 책정했다.
강희은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능행차의 출발지(서울 창덕궁)와 도착지(수원 화성)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며 “이번 재현 행사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재를 세계에 알릴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동근 수원시 제1행정부시장은 “능행차를 대한민국 최대 한류 퍼레이드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명수·조진형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