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의 Hola! Cuba!] ⑮ 예술의 도시 까마구에이

중앙일보

입력 2016.05.10 00:01

수정 2016.05.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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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까마구에이의 거리 풍경.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에 도착한 곳은 까마구에이(Camagüey)였다. 조용하고 맑은 공기와 깔끔한 식민지풍 건물이 눈에 띄는 이 도시는 스페인이 건설한 7개 도시 중 하나이자 쿠바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다. 1528년에 건설된 도시 까마구에이는 수도 아바나에서 약 550㎞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약 6시간 반 걸린다. 
 

영화와 도자기의 도시

 

까마구에이의 거리 풍경.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지구에 있는 작은 호텔 까미노 데 이에로(Camino de Hierro)는 1800년대에 지어진 부띠끄 호텔이다. 호텔의 로비는 아담하다. 식민지 풍의 건물답게 큰 문이 있고 열린 문 사이로 시원하게 밖이 내다보였다. 노란 교회와 작은 광장, 바쁜 걸음으로 아침을 여는 사람들까지. 낯선 도시 까마구에이는 첫인상부터 단정했고 친근했다.

 

쿠바 유명 여배우 이사벨라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이사벨라’.



  까마구에이는 예술 도시다. 영화와 문학, 미술과 깊은 인연이 있다. 쿠바의 유명 시인 니콜라스 기옌(Nicolás Guillén)이 까마구에이 출신이다. 쿠바의 유명한 영화배우 이사벨 산토스(Isabella Santos)도 까마구에이가 고향이다. 도시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식당 ‘레스떼우란떼 라 이사베야(Restaurante la Isabella)’가 있다. 영화를 테마로 한 식당이다. 벽에는 영화 포스터가 가득 걸려 있고, 영사기도 전시해뒀다. 의자에는 유명 감독과 영화배우의 이름이 쓰여 있다. 레스토랑 주변 거리에도 영화를 테마로 한 카페나 극장이 즐비하다.
 
물을 받아 생활에 사용하던 물 항아리.
독특한 예술품을 볼 수 있는 전시장.
성 행위를 묘사한 재미난 조각품.


까마구에이는 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cía)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흙을 재료로 한 예술품이 많은 것도 이와 관련 있다. 물항아리가 대표적이다. 까마구에이의 오래된 건물이나 박물관 등에는 흙으로 만든 동글동글한 물 항아리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물을 받아서 생활에 사용하던 것이다. 물론 흙 도자기뿐 아니라 예술가의 감각이 물씬 묻어나는 다양하고 재미난 작품을 전시해둔 갤러리도 많았다.  
 



친구처럼 편안한 도시 
 

산 후안데 디오스 광장의 한낮. 파란 하늘과 파스텔톤 건물이 잘 어울린다.



까마구에이는 천천히 걸어서 여행하기에 좋은 도시다. 작고 아담한 광장이 도시 곳곳에 있다.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게 오래된 파스텔톤 건물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걸어서 골목을 걷다 보면 꼬불꼬불 난 길에서 몇 번이고 지도를 펼치거나 길을 다시 물어야 한다. 다른 도시가 반듯하게 자로 댄 듯 구역이 정비된 것에 비해 이곳은 조금 독특하다. 골목이 비뚤빼뚤해서 여간 찾기가 쉽지 않다.
 

바 엘 깜비오(Bar El Cambio)의 독특한 인테리어.

그래도 걷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독특한 건축과 친절한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바 엘 깜비오(Bar El Cambio)는 1909년 지어진 건물에 들어선 작은 바다. 아그라몬떼(Agramonte) 공원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다. 작은 공간의 벽면은 예술 작품으로 가득하다. 흥미롭게도 칵테일이 유명한 이 작은 술집은 1959년 혁명 이후 국영화되었다. 바텐더는 쉰 살이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와 스물이 갓 넘어 보이는 앳된 청년이다. 언뜻 보기엔 어색한 조합이었지만 둘의 호흡은 제법 잘 맞았다. 그들은 지구 반대편의 낯선 여행자에게 정성을 가득 담아 칵테일을 만들어 주었고, 편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날마다 들러 수다를 떨고 싶을 만큼 쉽게 친해졌다.

작은 도시 까마구에이가 남긴 인상은 바로 이 술집처럼 푸근했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이름도, 찾아가는 길도. 그러나 금세 친해지고 나니 오랜 친구처럼 헤어지기 아쉬워 한없이 머물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