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은 K고를 관할하는 서울시교육청에 “수익자 부담 방식의 R&E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최근 냈다. K고는 교육부 요청에 따라 기존 계획을 보류했다. 영재학교·과학고에서 불기 시작한 R&E 스펙 열풍이 일반고까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에 대해 처음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 스스로 주제를 찾고 연구하는 R&E는 적극 권장하지만 학교가 추가 비용을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요구하는 방식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도한 수익자 부담 R&E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 전국적으로 실태 조사를 거쳐 장학지도·행정지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학생부 ‘논문 스펙’ 일반고로 번져
대학교수 지도받고 연구장비 활용
사교육업체 알선, 대필 의혹 불거져
서울·고려대 “전형에 반영 안 할 것”
일선 고교 “입시 반영 아예 금지를”
R&E는 2007년 대입 입학사정관 전형이 도입되면서 일부 수험생의 합격 사례로 소개된 뒤 최근 들어 이과 학생·학부모 사이에서 대입을 위한 주요 ‘스펙’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일부 학교가 학부모에게 연구 수행을 위한 비용을 부담시키면서 R&E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R&E를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한다. 학교 동문이나 대학의 재능기부, 과학교사가 방과후 지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동문 교수의 참여와 동창회 기부로 R&E를 운영한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인근 고교들의 R&E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교육부는 지난 2월 영재학교·과학고·과학중점학교 중심에 머무는 R&E 지원을 일반고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교육부는 학부모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R&E만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교사들은 “학교 과정에서 벗어난 수준의 R&E는 대입 반영을 아예 금지하자”고 주장했다. 상당수 일반고 교사는 “학교 형편상 여의치 않다”고 호소했다.
강북의 한 일반고 과학교사는 “동문·학부모 중 대학교수가 많은 강남은 몰라도 우리 학교는 재능기부할 만한 분이 드물다. 과학고와 달리 과학교사도 적고 석·박사 학위가 있는 이도 드물어 쉽지 않다”고 한숨 쉬었다. 서울 강남의 한 일반고 교장도 “여러 대학에 도움을 청했지만 ‘교수 강의 한두 번은 몰라도 학생 연구를 꾸준히 강의하는 방식은 곤란하다’고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R&E의 대입 반영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사교육업체가 학생들의 스펙 마련 차원에서 R&E를 알선할 뿐 아니라 소논문을 대필해 주고 있다는 소문이 제기되자 서울대·고려대 등은 최근 “R&E보다 학교 교과활동을 우선하는 게 좋다” “소논문은 대입 전형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배영준 보성고 진로진학부장(교사)은 “대학이 ‘반영비율이 낮다’고 밝히는 것만으로 학생·부모의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교육 당국이 나서 입시 반영을 일절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연근(잠실여고) 전국진학지도교사협의회 수석대표는 “교수의 지도, 첨단 장비에 힘입은 R&E나 소논문은 학교 교육 과정에서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대입 반영을 규제하는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민경·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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