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치맥페스티벌 마지막 날인 지난달 26일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야구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축제가 열린 닷새간 대구시민과 국내외 관광객 88만 명이 이곳을 찾아 치킨과 맥주를 즐겼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다녀갔다. 축제장을 돌며 치킨과 맥주를 즐기던 리퍼트 대사는 “대구 치맥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축제 기간 닭 33만 마리와 맥주 70만 캔이 팔렸다.
“대구에서 웬 치맥축제?”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여기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대구 사람들의 닭 사랑은 예전부터 유별났다. 기후도 한몫했다. 대구의 더위는 예부터 유명했다. 한여름이면 밤낮없이 푹푹 찌는 날이 이어진다. ‘찜통도시’라는 말이 달리 나온 게 아니다.
시래기 품은 찜닭, 활력닭발 … ‘대구 치킨’ 무한변신
맥시칸·호식이두마리·교촌의 고향
올해 치맥축제 5일간 88만 명 찾아
닭 33만 마리, 맥주 70만 캔 팔려
닭똥집 골목은 국내에서 똥집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이다. 주말이면 최대 1t까지 소비된다. 닭똥집 튀김은 1972년 이 골목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던 이두명(73)씨 부부가 처음 개발했다. 똥집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기름에 튀긴 뒤 술안주로 내놨더니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이후 닭똥집 가게가 하나둘 늘면서 골목을 이루게 됐다. 이원우 닭똥집 골목 상우회장은 “닭똥집 튀김은 기본이고 집집마다 새로운 메뉴를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래기 품은 찜닭’도 있다. 당면을 많이 쓰는 안동찜닭과 달리 시래기를 듬뿍 넣은 복고풍 찜닭이다. 무·감자·양파·대파를 굵게 썰어 넣고 간장 양념으로 끓여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낸다. 요리마다 작은 장뇌삼 한 뿌리를 올려 준다. 활력의 상징이란다. 김동환 활력닭발 대표는 “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맛있게 먹고 힘을 낼 수 있도록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메뉴를 만들었다”고 했다.
‘담김쌈’이란 음식도 나왔다. 엄마의 마음이 담긴 쌈이라는 뜻이다. 대구 지역을 연고로 한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인 교촌치킨이 지난 2월 수성구 들안길 먹거리타운에서 처음 선보였다. 담김쌈은 김밥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르다. 김밥은 재료가 가운데 몰려 있지만 담김쌈은 층층이 쌓여 있다. 채를 썰어 볶은 당근, 계란과 시금치 무침, 늙은 오이 절임, 목이·팽이 등을 넣은 버섯밥, 치자 물로 지은 노란색 밥과 흑미로 지은 밥 등이 7개 층을 이룬다.
여기에 하나가 더 들어간다. 바로 닭고기다. 저온 숙성한 닭가슴살, 매콤한 소스와 간장 소스를 발라 숯불에 구운 닭다리살을 사용한다. 손님 허진희(42)씨는 “채소류와 닭고기를 함께 내놓는 게 입맛에도 맞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색 안주도 있다. 닭 가슴 부위에 있는 V자 형태의 연골인 오돌뼈에 튀김옷을 입힌 오돌뼈 튀김은 고소하면서 씹히는 맛이 독특하다. 얇게 발라낸 닭가슴살에 소금·후추로 밑간을 하고 말린 뒤 튀긴 ‘꼬끄칩스’도 있다. 프랑스어로 닭이란 뜻의 꼬끄와 감자튀김인 칩스를 합친 이름이다. 근육 형성에 도움이 되는 가슴살을 크래커처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며 대구는 ‘치킨 브랜드의 산실’로 자리를 잡았다.
국내 첫 치킨 프랜차이즈는 77년 서울 신세계백화점 안에 1호점을 낸 림스치킨이다. 닭을 큼직하게 조각내 기름에 튀긴 형태였다. 하지만 양념치킨을 처음 선보인 곳은 대구였다. 통닭집을 운영하던 윤종계(63) 윤치킨 대표가 80년대 초 마늘·양파·생강·물엿·고춧가루 등으로 그만의 치킨 소스를 개발했다. 빨간 소스로 버무린 그의 ‘맥시칸 양념통닭’은 불티나게 팔렸다. 당시 전국 가맹점이 1700개에 달했다.
윤 대표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며 “그래서 ‘눈으로 먹는 통닭’을 떠올렸고 빨간 양념 개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후 교촌·페리카나·호식이두마리 등 전국적인 치킨 브랜드가 대구에서 잇따라 나왔다. 박준 치맥페스티벌 추진위원장은 “대구 치킨업계의 경쟁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치열한 만큼 앞으로도 이곳에서 새로운 닭 요리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