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00만원짜리 ARS에 휘둘린 ‘여론’

중앙일보

입력 2016.05.06 02:30

수정 2016.05.06 15:3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지난해 10월 7일. 세계 최대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1, 2위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2012년 대선 때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이길 것이라고 잘못 예측한 데 대한 반성이었다.

#4·13 총선 결과는 한국 여론조사업체들엔 ‘대재앙’이었다. 선거 이틀 전 한국갤럽·코리아리서치·미디어리서치 등은 새누리당 의석을 155~169석으로 예측했으나 실제 결과는 122석이었다.

여론조사 이대론 안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었다. 20대 총선 여론조사는 2014년 지방선거 때에 비해 횟수는 두 배 이상 늘었지만 품질은 바닥이었다.

중앙일보가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여심위)로부터 단독 입수한 ‘20대 총선 여론조사 통계’에 따르면 공표된 여론조사는 2년 전 지방선거(816건)에 비해 113.7% 늘어난 1744건이었다. 정당·후보자 등이 실시한 비공개 조사(3630건)를 포함하면 모두 5374건으로 선거구(253개)당 21번꼴로 여론조사가 이뤄졌다. 조사기관 수도 지방선거(114개)에 비해 72개(63.2%) 늘어난 186개였다. 이 중 자동응답(ARS) 업체가 132개(71%)였다.

반면 여론조사 신뢰도와 품질을 결정하는 평균 응답률은 8.9%로 10%에도 못 미쳤다. 통계학자들이 권장하는 20%의 절반에도 못 미친 수치다. 여론조사 전화를 유권자 100명이 받았는데 8.9명만 조사에 응했다는 뜻이다. 2014년 지방선거 응답률(11.0%)보다도 2.1%포인트 낮다. 특히 ARS 조사의 경우 응답률이 4.2%에 불과했다.


류정호 여심위 팀장은 “현행 여론조사는 신고제로 500만원 정도인 중고 ARS 기계만 있으면 사업자등록을 내고 여론조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횟수는 늘었지만 신뢰도가 떨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류 팀장은 “‘떴다방’식 여론조사에 대해 정밀 실태조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야당 의원은 “선거가 임박하자 한 지역 언론에서 ARS 조사 비용으로 500만원을 요구해 거절했더니 다음날 경쟁 후보에게 유리한 기사가 실리더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① [단독] 안 받는 전화는 다시 걸어 응답률 20%대로 높여라
② [단독] 집전화 조사, 새누리 5%P 높게 더민주는 15%P 낮게 나와

이에 따라 중앙선관위는 20대 국회에서 선거여론조사를 개선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동일 업체의 조사 결과마저 의뢰자에 따라 1, 2위가 뒤바뀌는 등 여론조사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①‘떴다방’식 저가·저품질 여론조사를 막는 여론조사기관 인증·등록제 ②집전화 대신 안심번호 휴대전화 조사 도입 ③선거 막판 일주일간 ‘깜깜이 선거’로 만드는 현행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축소·폐지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양정열(TNS코리아 대표) 한국조사협회 회장은 “총선 예측 실패로 국민께 송구하다”면서 “조사업계도 최소한 선거여론조사 자격 기준을 만드는 등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효식·이지상 기자 jjp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