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먼저 과거 주요국 사례를 살피는 건 ‘정보 부족’으로 당장 한은이 할 수 있는 검토방안이 제한적인 탓이다. 정부는 부실기업 현황이나 구조조정 진행상황 등을 4일 열리는 ‘국책은행 자본 확충 태스크포스(TF)’를 시작으로 관계기관과 공유할 계획이다. 아직까지 한은에 이런 정보가 없다는 뜻이다. 이날 회의를 통해 필요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 규모 및 지원방식 등을 가늠해야 한은도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살필 수 있다.
검토는 시작했지만 국책은행 자본 확충의 키는 재정이 쥐고 나가야 한다는 한은의 기본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한은의 다른 관계자는 “제너럴모터스(GM) 등의 구조조정 과정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미국 재무부가 재정을 통해 지원을 했다”며 “구조조정 과정에 따른 손실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책임지고 중앙은행은 금융시스템 리스크와 같은 상황에 대응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라고 말했다.
오늘 정부 TF회의 진통 예고
유, 구조조정 실탄 마련 한은 압박
한은, 미·일 재정 지원 방식 검토
역할 한다면서도 ‘재정 우선’ 입장
“발권력을 활용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의 ‘원칙론’에 대해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 부총리는 또 “구조조정은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추경의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은의 ‘재정 우선’ 기류에 대한 반박 강도를 높이고 구조조정 재원 활용에 재정보단 통화정책을 앞세우자는 입장을 거듭 밝힌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중앙은행 기대기가 갈수록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은은 지난해 4월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기 위해 금융중개지원대출의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20조원으로 늘렸다.
같은 해 8월에는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산업은행의 출연(500억원)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에 3조4000억원을 대출했다. 중기 지원, 회사채 시장 안정 등 다양한 이유로 이미 발권력이 자주 동원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한은의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발권력을 활용한 한은의 대출 규모(잔액 기준)는 4월 말 현재 19조6471억원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71년 이후 가장 많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재정이 좋지 않고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에서 발권력 활용은 불가피하다”며 “다만 한은의 대출금이 급하게 늘어나면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는 만큼 급하지 않은 상황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