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 출신 최모 변호사는 로펌을 거쳐 2년 전 개인 사무실을 열었다. 현직 때 소년범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글을 써 문예상을 받았다. 최 판사는 자신도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친척집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고시원에서 하숙집으로 돌아와 혼자가 되면 외로움에 어느새 약한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외에도 한때 특수 수사로 명성을 날렸던 검사장급 출신 변호사와 현직 부장판사·의사·건설업자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막장 드라마 같은 법조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다. 사건 발생 뒤 어설픈 위기 대응은 화를 키웠고,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자초했다. 성공가도를 달렸던 두 사람은 어쩌다가 한 방에 훅 갈 위기에 처했을까.
#자기 과시는 적을 만든다
정 대표의 해외 원정도박 혐의에 대한 수사는 경찰에서 시작됐다. 경찰은 2014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검찰도 같은 사유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정 대표 측의 입이 문제였다. 변호사와 친분이 있는 사정당국 관계자의 이름을 들먹이고 다닌다는 첩보가 들어간 것이다. 정 대표는 결국 지난해 말 검찰 재수사를 거쳐 구속 수감됐다. 쓸데없었던 정 대표 측의 자기 과시는 불운과 망신을 불러들였다. 수십억원의 변호사 비용을 쓰고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지 못했고, 시민들 사이에선 네이처리퍼블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조짐마저 일고 있다.
#이익엔 위험이 따른다
최 변호사가 경제적 주름살을 펴기 시작한 건 지난해다. 1억원 안팎의 돈을 투자한 것을 계기로 알게 된 유사수신업체 대표의 사건을 맡으면서다. 그녀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대가로 20여억원을 받아낸다. 로펌 시절 연봉의 10배를 한 번에 거머쥔 것이다. 이어 정 대표의 항소심 사건을 변론하면서 보석을 조건으로 50억원의 베팅을 요구했다. 20억원은 선불로, 30억원은 예금통장에 보관하는 형태로. 그녀 역시 재판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필요 이상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만약 ‘재판장이 보석을 약속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내세워 돈을 받았다면 사기죄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익을 챙기려면 위험 을 감수해야 하는 이치를 몰랐던 것일까.
#싸움은 호기심을 이끈다
두 사람은 돈 앞에선 진흙탕 싸움이나 다름없는 볼썽사나운 광경을 연출했다. 20억원의 반환 여부를 놓고 구치소 접견 장소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최 변호사와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사람은 진단서를 끊어 정 대표를 고소했다. 정 대표는 반대로 과다 수임료 문제를 제기하며 서울변호사협회에 진정을 넣었다. 싸움은 대중의 호기심을 끌 수밖에 없다. 공평하지 않은 게임 머니가 걸렸을 경우 양비론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파계(破戒) 법정’의 생리일 것이다. 타인의 이목을 내팽개친 배경에는 “내가 법률가”라는 교만과 “나는 천억대 자산가”라는 허세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흥분하면 진다
청나라 강희제는 성격이 급했던 넷째 아들 윤신에게 ‘계급용인(戒急用忍)’이란 네 글자를 남겼다. “급한 것을 경계하고 최대한 참아라.” 윤신은 이후 옹정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빼달라”며 돈의 갑(甲)질을 한 사람이나, 박봉의 공무원 시절을 보상받겠다며 평균 수임료의 1000배를 불렀던 변호사는 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상식을 뛰어넘는 법조계 돈거래는 이성적으로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법원·검찰·변호사단체는 흥분할 게 아니라 사건의 끝을 봐야 할 것 같다.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