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광주와 대구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주시민에게 ‘삼성의 미래차 산업 유치’를 공약했고, 새누리당은 대구시민에게 ‘10대 기업 유치’를 공약했다. 더민주는 삼성 출신 후보를 내세워 김종인 대표가 약속을 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과 청와대를 내세워 서청원 최고위원이 약속을 했다. 김종인과 서청원, 두 사람은 지역구 후보로서가 아니라 당 대표로서 공약했다. 따라서 이 공약은 당 차원의 약속이다. 10대 기업과 삼성 유치는 지역경제가 어려운 대구와 광주 시민에게는 삶과 직결된 너무도 중대한 공약이다. 더민주는 삼성과 사전에 “협의했다”며 “유치해서 5년간 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약속했다. 삼성은 즉각 “검토한 바 없다”고 부정했지만 제1 야당 대표의 약속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에게 건의해 청와대로부터 ‘여러모로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확인까지 했고, 청와대나 대통령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으니 더욱 믿을 만하다. 더민주가 광주에 삼성이라는 구체적인 기업을 명시했으니, 새누리당이 이에 버금가는 10대 기업을 대구에 유치한다면 현대차·SK·LG·롯데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당은 물론 대통령조차 특정 민간기업을 특정 지역에 유치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민주와 새누리당이 지금의 한국 경제를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을 쥐고 흔들던 개발독재 시대로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특정 기업 유치 공약은 기업에 공개적으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수퍼갑질이다. 불법·탈법·탈세 등의 약점이 많은 재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재벌 총수들은 사면과 같은 식으로 ‘보답’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양당이 실제로 삼성과 10대 기업의 유치에 나선다면 이는 정치적 거래가 될 공산이 크다.
셋째, 전국 16개 시·도 중 1인당 지역내총생산에서 대구와 광주가 꼴찌에서 1, 2등이다. 지역경제가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려운 지역이 대구·광주뿐이겠는가. 1인당 지역총소득으로 보자면 강원도와 전라북도가 꼴찌에서 1, 2등으로 대구와 광주보다 낮다. 고용률은 부산과 강원도가 꼴찌에서 1, 2등이다. 인천의 실업률도 대구만큼 높고, 청년실업률은 강원도가 대구보다 높다. 재정자립도는 전라남도와 강원도가 꼴찌에서 1, 2등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사회적 불균형이 극심한 상황에서 정당이 추구할 정책은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이지 특정 지역만을 정략적으로 지원하는 약탈적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대구와 광주 시민에게는 대단히 실망스럽겠지만 삼성과 10대 기업 유치는 정당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자치단체가 시민과 함께 해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민은 그런 공약을 한 정치인과 정당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약속을 할 정당한 권한도, 약속을 지킬 현실적인 방법도 없으면서도 ‘유치하도록 노력하겠다’도 아니고 “유치하겠다”고 단언한 정당과 정치인을 기억하고 다음 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