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날 규개위는 해당 조항을 철회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상단에 넣어야 하는 이유가 부족하니 담배회사가 위·중간·아래 상관없이 알아서 하라는 취지였다. 올 12월 경고그림 시행을 앞둔 복지부는 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경고그림이 하단에 들어가면 판매점 진열대 가리개에 가려질 수 있고 가독성도 떨어지게 된다는 이유다. 복지부는 규개위에 재심사를 요청할 예정이지만 결정이 뒤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서홍관 회장은 “흡연자와 청소년은 논외였고 판매업자들에게만 초점이 맞춰졌다”고 지적했다. 담배회사와 판매인들도 할 말은 있다. 후두암 환자의 뻥 뚫린 목처럼 차마 보기 힘든 그림을 잘 보이게 하는 건 담배 판매인과 손님에 대한 시각적·정신적 폭력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경고그림 부착 위치를 규제로 판단하고 있는 규개위의 결정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멀어도 한참 멀다. 경고그림은 외국에서도 가장 많이 도입하고 있는 대표적인 비가격 금연정책이며, 경고그림 부착 위치를 상단으로 못박은 국가도 51개국이나 된다. 한국이 이미 비준한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에는 ‘가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상단에 위치하는 게 좋다’고 규정돼 있다.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담배회사에 최대한의 규제를 가하자는 게 전 세계적 합의다. 규개위 결정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경고그림 도입의 필요성은 지난해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미 합의됐다. 특히 처음 흡연을 경험하는 국내 청소년의 평균연령이 12.7세인 상황에서 청소년 보호라는 도입 취지도 공감을 얻었다. 실제로 태국은 2006년 경고그림 도입으로 18.9%(2005년)였던 청소년 흡연율을 9.7%(2014년)까지 떨어뜨렸다.
규개위가 혁파해야 할 규제는 국제적 흐름에서 멀리 떨어진 ‘갈라파고스’식 규제이지 담배 규제는 아니다. 담배회사의 자율성과 국민의 건강권을 저울에 올려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