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무한도전뿐만이 아니다. 보수나 진보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정치적 기사나 성(性)처럼 민감한 사회 이슈를 다뤘을 때도 ‘기레기’라는 꼬리표가 달리곤 한다. ‘기자+쓰레기’를 뜻하는 기레기는 세월호 사건 이후 보통명사가 됐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흔히 말하는 ‘낚시성’ 기사나 취재가 덜 된 ‘베끼기’ 기사로 보이면 가차 없이 기레기라는 댓글이 쏟아진다. 때로는 자기 생각과 많이 다른 글을 쓴 이에게도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있다.
숨겨진 비리를 파헤치고, 불의에 항거하며, 굳은 신념을 잃지 않고…. 이상적인 기자의 모습은 ‘스포트라이트’(2015),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2009) 같은 영화에서 잘 나온다. 이 땅의 젊은 기자들도 대개 그런 꿈을 꾸며 언론사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동료 기자들 중에는 초심은커녕 일에 치여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에 급급한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도 “취재는 제대로 한 거냐”며 기레기라고 비아냥거리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 서글퍼진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알파고’의 인공지능(AI) 때문이다. 아무런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기사를 양산할 수 있는 로봇 저널리즘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에선 이미 현실이 됐다. 2012년 포브스가 처음 도입했고 AP통신·LA타임스 등도 일부 기사를 AI에 맡기고 있다. ‘워드스미스’라는 AI는 2014년에만 10억 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바둑 9단 이세돌뿐 아니라 ‘기사 9단’ 기자들도 언제든 패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로봇 저널리즘이 판치고 ‘인간성’이 사라지면 기레기란 용어마저 사치가 될지 모른다. 기자들이 설 자리도 좁아지겠지만 독자들도 차가운 로봇에 욕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직 ‘인간적 기사’가 독자의 공감을 얻을 때 한 발이라도 더 뛰고 1분이라도 더 취재해야겠다. 독자와의 피드백이 사라지고 기레기가 ‘멸종’하는 끔찍한 그날이 오기 전에 말이다.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