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의 한 식당. 20년째 조선소 앞에서 국밥을 말아주는 할머니는 점심시간에도 파리만 날리고 있었습니다. 12일 낮 12시 쯤 방문한 기자가 당일 첫 손님이었죠.
"조선불황에 4000원 국밥 못올려
직원 부인 드나든 업소 속속 폐업"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의 대우조선해양. 식당 아주머니는 이날을 떠올린 걸까요. [사진=중앙DB]
대우조선해양 서문 앞 일렬로 정렬된 오토바이. [사진=문희철 기자]
옥포를 떠날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던 선박들. [사진=문희철 기자]
대우조선해양은 올해에만 총 9기의 해양플랜트를 인도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비어가는 도크를 채울 신규 수주 소식이 뜸해도 너무 뜸합니다. 지난 대우조선해양은 13일 5개월 만에 첫 수주에 성공했지만 영업으로 따온 계약이 아니라, 해외 자회사의 물량을 이관하는 방식의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추가 발주가 뜸한 상황에서 건조 중인 프로젝트를 썰물처럼 인도하고 나면 그 다음엔 대규모 하청 노동자 감축이 우려됩니다.
조선소 깊숙이 들어가자 4번 도크가 비어있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도크도 4번 도크 신세가 되는 건 피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비어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4번 도크. [사진=문희철 기자]
선주사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노란 머리의 외국인들을 수행하는 일부 직원만 이른바 ‘직영’으로 보였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인력 4만2000여 명 중 2만8000여 명이 협력사 직원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있는 ‘외주’ 근로자 비중은 훨씬 커보였습니다.
이따금 다소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안전=사랑’이라는 표현을 6개국 언어로 적어둔 대형 플래카드가 펄럭입니다. 지상에서 용접 작업을 하거나, 배에 매달려 용접을 마친 부위를 그라인더로 매끄럽게 갈아내는 위험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 중 외국인 노동자가 꽤 눈에 띄었습니다.
선체 외부에서 작업중인 대우조선해양 ‘외주’ 근로자 [사진=문희철 기자]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골리앗 크레인 [사진=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지역내 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거제시와 달리, 울산시는 현대중공업 외에도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조선업 불황의 그림자가 비껴간 건 아니었습니다. 수 년 전만 해도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북적이던 울산 동구 명덕, 일산지, 남목동 일대는 요즘 야간에 인적이 뜸하더군요.
현대중공업 사람들이 잘 간다는 울산 일산해수욕장에 가봤습니다. 제가 방문하기 바로 전날 김무성 새누리당 당시 대표가 찾아와 선거 유세를 하고 갔다고 하더군요.
페라리를 몰고 일산지 해변에서 소주를 마시던 한 자영업자 스토리도 꽤 재미있었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대화 보따리를 술술 풀어놨습니다. 울산 삼산동에서 울산 아줌마를 대상으로 호스트바를 운영해 수십억원을 벌었다고 하더군요.
“그땐 울산 아줌마를 대상으로 사업하면 뭘 해도 ‘대박’이었어요.”
처음엔 야간 호스트바를 운영했는데 손님이 거의 없었답니다. 하지만 주간 호스트바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더니 점차 입소문이 났다고 사업 수완을 털어놨습니다.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등으로 출근하는 남편들이 없을 때 호스트바 손님이 몰렸다는 거죠. 한창 잘 나갈 땐 17~23세 남자 접대부를 40여 명 이상 고용할 정도로 사업이 번성했다고 합니다.
사업에서 손을 뗀 시점도 기가 막혔습니다. 수 년 전에 권리금 4억5000만원을 받고 호스트바를 넘겼다고 하더군요. “울산에선 조선업과 호스트바가 같은 운명”이라며 “조선 불황이 오면 호스트바도 덩달아 사양업종이 될 걸로 봤다”고 말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그는 “조선업 불황이 계속되면서, 내가 넘겼던 호스트바가 얼마 전 문을 닫았다고 들었다”라며 “현대 사모님들이 지갑을 닫기 전 적기에 사업을 넘겨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군요. “언젠가 경기가 풀리면 부산에서 같은 사업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라던 이 페라리 아저씨가 다시 사업을 시작할 날이 올까요. 물론 관건은 조선 경기겠지요.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던 부산신항 [사진=송봉근 기자]
울산 조선업종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이제 부산 영도나 장림 일대 중소형 조선소에서 일한다고 합니다. 인근에서 만난 K씨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조선소에서 버림받았지만 조선소를 못 떠난다”고 말했습니다. “(울산과 달리) 부산에는 마음만 먹으면 일할 자리는 많아요. 월급이 적고 더러운 일이긴 하지만요.”
울산과 똑같이 조선소란 이름이 붙은 곳에서 일하지만, 선박 건조 관련 업무가 아니라고 하네요. 주로 선박 수리를 하며 입에 풀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선박 수리일도 점차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이마저 일감이 줄어드는 추세라는 겁니다. 20여년 동안 원양어선 선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P씨는 “2년 안팎 원양에 나가 조업하면 6개월은 정박하며 다음 조업을 준비한다. 보름 정도 소요되는 수리비가 우리나라는 2억원 안팎인데 중국에선 1억2000만원이면 가능하다. 기름 값이 조금 더 들더라도 중국 가서 수리하는 게 훨씬 싸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업 전방 산업인 해운업은 벌써 오래 전부터 불황이 심각합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경영난에 처하면서 해운업계에서는 2009년부터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60%를 처리하는 부산신항에 방문하자 빈 컨테이너(empty container)가 잔뜩 쌓여있는 걸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신항에 가득 쌓여있는 빈 컨테이너(empty containe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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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울산·거제 등 조선벨트는 이렇게 우울한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기 침체를 벗어날 마땅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다음번에는 각종 수주 소식으로 되살아난 부산벨트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거제·울산·부산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