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살인 같은 범죄 현장을 재구성할 때 쓰는 피는 주로 동물 피다. 돼지 피를 많이 쓴다. 정교한 판단이 필요한 범죄 현장에선 100mL에 4만원이 넘는 미국산 모조 혈액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대한 사람 피와 유사한 것을 써야 어떤 각도로 얼마만큼의 피가 튀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의 혈액을 채취해 쓰기도 한다. 꿀 같은 액체에 붉은색 물감 등을 섞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가 사람 피와 점도·탄성이 90% 이상 유사한 모조 혈액을 개발했다. 2011년 대구한의대 향산업학과와 공동 개발에 착수한 지 5년 만에 낸 성과다. 수사 현장에 사용할 수 있는 모조 혈액을 개발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대구경찰청서 모조 혈액 개발사람 피와 90% 유사, 값도 저렴
개발 사연은 2011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김영규(51) 경위는 동물 피를 쓰고 싶지 않았다. 역한 냄새가 나고 위생상 불결해 보였다.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명 ‘꿀피’를 직접 만들어봤다. 초콜릿·캐러멜·꿀 등 50여 가지 액체에 물감을 섞어서다. 하지만 점도와 탄성이 실제 피와 달라 번번이 실패했다. 사람 피는 둔기나 흉기, 손으로 충격을 가했을 때 피가 튀어 나가는 방향이 일정하다. 튀는 방향과 혈흔만 봐도 어느 방향에서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떤 도구로 범행이 있었는지 예측 가능하다.
김 경위는 액션 영화를 많이 제작한 장진 감독을 찾아갔다. 특수 촬영에 쓰는 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수사용으론 맞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 대구한의대 향산업학과 박찬익(46) 교수를 알게 됐다. 액체의 점성과 탄성을 연구하고 계산해 화장품을 만드는 전문가였다. 김 경위는 박 교수에게 “모조 혈액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과학수사계 동료의 협조 아래 그는 박 교수와 5년간 30개의 피 샘플을 제작해 테스트했다. 사람 피와 다른 혈흔을 내는 샘플은 내다 버리길 반복했다. 개발에 수년이 걸린 이유다. 모조 혈액은 최근 한국고분자시험연구소의 검증을 통과했다. 사람 피와 유사하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