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울청사에선 4년 전에도 60대 남성이 사무실에 들어와 불을 지르고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경비를 강화했음에도 또다시 청사 관리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경찰 합격자 발표 전날 긴급체포지난달 26일 15층 인사혁신처 잠입PC 침입흔적 31일 발견, 다음날 신고
송씨는 자기 성적을 일부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는 제주도의 한 대학 졸업예정자다. 지난달 5일 지역인재 7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봤다. 이 시험은 지방대학 학생으로 성적 상위 10%로 총장 추천을 받아야만 응시할 수 있다. 올해는 필기시험에서 132명을 뽑는다. 경쟁률은 6.4대 1에 이른다.
송씨는 경찰 조사에서 “필기시험을 보기 전에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와 체력단련실에서 공무원 신분증을 훔쳤으며 지난달 26일 이전에도 훔친 신분증으로 청사에 들어온 적이 있다. 시험지를 훔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진술했다. 정부청사는 건물 밖과 1층에서 각각 한 차례씩 신분증을 제시해야 들어올 수 있다.
특히 1층에선 신분증을 개찰구에 접촉해야만 들어올 수 있다. 이때 신분증 소지자의 신원과 사진이 모니터에 뜨게 된다. 모니터에 뜬 얼굴과 송씨의 얼굴이 달랐지만 송씨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송씨가 침입한 날 해당 사무실엔 근무자가 없었다. 전자도어록이 설치된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고 인사혁신처는 밝혔다. 정부청사의 각 사무실은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다. 비밀번호를 알 리 없는 송씨가 사무실로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주요 수사 대상이다.
경찰은 송씨가 “훔친 신분증으로 여러 차례 청사에 들어왔다”고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과 관련해 송씨의 침입을 도운 내부자가 있을 가능성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다. 내부자를 보호하기 위해 송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송씨가 시험 담당 공무원의 컴퓨터 전원을 켜고 부팅 중 비밀번호를 삭제하는 방법을 이용해 컴퓨터에 접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인터넷상에 떠도는 방법으로 송씨가 비밀번호를 삭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컴퓨터의 비밀번호가 무력화됐다면 정부의 컴퓨터 보안이 매우 허술하다는 방증이 된다.
인사혁신처는 외부인이 침입해 담당자 컴퓨터에 접근한 흔적을 닷새가 흐른 지난달 31일에야 발견하고 지난 1일 경찰에 알려 수사를 의뢰했다. 혁신처의 한 관계자는 “담당자가 자기 컴퓨터의 비밀번호가 삭제된 것을 알았으나 외부인의 침입으로 즉각 의심하지 않았고 문서를 대조하다 조작 사실을 알아내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부청사 내의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해 용의자를 특정하고 4일 제주도의 송씨 집에서 송씨를 긴급체포했다. 송씨의 공무원 시험 응시가 이번이 처음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외부인 침입 사실을 곧바로 외부에 발표할 경우 용의자가 숨거나 도주할 가능성이 있어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외부인 침입을 자체적으로 인지하고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므로 관련 시험 합격자 발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했다. 4년 만에 정부청사가 또 뚫리면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시윤·박민제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