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전거 제조업체 알톤스포츠가 올해 선보일 e시리즈 모델 중 하나인 ‘커뮤트(COMMUTE)’가 앞에 있다. 기자가 체험해볼 전기자전거다. 겉보기에 일반 산악용자전거(MTB)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모니터가 핸들 중앙에 달려있고, 앞뒤 브레이크의 위치가 일반 자전거와 반대라는 것, 그리고 ‘스로틀(Throttle)’이라 불리는 레버가 달려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체험을 하기에 앞서 헬멧과 팔과 발을 보호하는 보호대를 착용했다. 집에서 가까운 중랑천변에 있는 자전거도로로 나가면 된다. 중랑천을 달리면서 봄 기운을 흠뻑 느껴볼 계획이었다.
도심에서 자동차 대신할 수 있는 운송수단인데…
현행법상 전기자전거는 차로 분류
세계 시장은 중국·유럽 중심으로 성장
중국 전기자전거 시장 연평균 11% 성장
전기자전거 시장에서 5%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유럽에선 독일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독일의 경우 일반 자전거 판매량은 2011년 370만대에서 2013년 330만대로 줄어들고 있지만, 전기자전거 판매량은 2011년 33만대에서 2013년 41만대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일반 자전거의 판매량은 줄어들고, 전기자전거 판매량은 늘어나고 있다.
전기자전거를 구매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나라도 있다. 스페인은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전기자전거 구입 보조금 정책을 펴고 있다. 대당 지원금은 200유로(약30만원). 유럽 전기자전거 평균 가격의 10% 정도를 지원하는 셈이다. 2009년부터 프랑스 파리는 전기자전거 구매 가격의 25%까지(최대 400유로) 지원해주고 있다. 프랑스 낭뜨에서도 최대 300유로를 지원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미미하다. 한국교통연구원 신희철 연구위원은 “한국에는 전기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수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시장 규모는 1만3000여 대, 2015년에는 1만7000여 대에 불과하다. 세계 전기자전거 시장의 0.05%에 불과하다.
언덕이 많은 한국에서 전기자전거는 노약자 등의 교통약자의 보조 이동수단과 직장인의 출퇴근 수단으로 효용가치가 많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시장의 특성상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도 덜하다. 그럼에도 전기자전거는 외면을 받고 있다. 신희철 연구위원은 “전기자전거는 법적으로 자전거가 아니다”라며 “전기자전거가 자전거로 인정받아야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약칭 자전거법으로 불리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 2조에서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페달이나 손페달을 사용해 움직이는 구동장치와 조향장치 및 제동장치가 있는 바퀴가 둘 이상인 차로서 행정자치부령이 정하는 크기와 구조를 갖춘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에서 전기자전거는 ‘차’에 포함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전기자전거를 타려면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가 있어야 하는 것. 신희철 연구위원은 “전기자전거를 타는 데 면허가 필요한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꼬집었다.
전기자전거 운전에 면허 필요한 나라는 한국뿐
2012년부터 전기자전거 대중화를 위한 제도 개선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뾰족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2012년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자전거에 전기자전거를 포함하려는 자전거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15년 5월 ‘전기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 강 의원은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더불어 성장하고 있는 전기자전거 활성화를 위한 활로가 입법 과정부터 국회에 발이 묶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행정자치부는 전문가의 의견수렴과 공청회 등을 거쳐 입법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기자전거 업계의 한 전문가는 “자전거동호회 회원들이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치인들도 이 때문에 법 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알톤스포츠·삼천리자전거 같은 자전거 제조 업체도 R&D 투자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배터리 등의 연관 산업의 발전도 더딜 수밖에 없다. 알톤스포츠 김민철 마케팅 팀장은 “한 해 전기자전거 판매대수가 수천 대에 불과하다”면서 “해외 수출을 노려야 하는데, 내수 시장이 받쳐주지 않으니까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최영진·유부혁 기자 cyj7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