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퇴직을 시키고자 하는 직원을 잘라내는 데는 매우 다양하고도 모욕적인 방법이 동원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연고도 없고 출퇴근도 불가능한 먼 곳으로 발령을 보내는 것은 양반이고, 하루아침에 본인이 내내 해 온 직무와는 관계도 없고 직급도 한참 낮은 보직으로 변경한 후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최하위의 업무평가를 줘 해고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십 년 책상물림이었던 부장님에게 전봇대 관리를 맡기거나 땅을 파게 하는 식이다. 또는 몇 년 전 잘못 처리된 식대 영수증 같은 것을 다시 끄집어내 새삼스러운 징계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동료들에게 퇴직 대상자로 선정된 해당 인들에게 말을 걸거나 친한 척하지 못하도록 하고, 책상을 빼 하루하루 보낼 곳을 찾아 헤매게 하거나 비록 책상을 빼지는 않되 오로지 사물함 문짝만을 바라보고 종일 앉아 있도록 배치하기도 한다. 컴퓨터를 회수하는 것은 물론 허용되던 휴대전화 사용도 못하게 한다. 화장실을 갈 때도 보고를 하고 가도록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화장실 가는 횟수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더라. 아직 퇴직을 하지 않았는데도 회사 출입카드를 정지시켜 이미 이 회사 사람이 아님을 주지시키는 예도 있다. 참으로 기발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정 연령대 이상 퇴직자의 재취업이 거의 불가능하고 거기에 사회 보장이 매우 취약한 한국의 경우 이와 같은 방법들이야말로 자존심이 내 가족 밥 먹여주느냐며 버티고 버티던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떨쳐 일어나 회사를 뛰쳐나가도록 고안된 것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행위들이 허용되고 있다니 그것이 더 놀랍다.
그러나 영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면서 무리하게 절차를 위반하거나 모욕을 가하는 일을 최근에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법에 정해진 절차를 밟지 않거나 모욕을 가하면 부당한 해고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경우 손해배상금, 법률 비용 등을 지불해야 하고 운이 나쁘면 신문에 보도돼 회사 평판이 바닥에 떨어지기 딱 좋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니 한국에 있는 회사들이 그 직원들을 쫓아내면서 놀랄 정도로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여전히 자행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그렇게 해도 되기 때문이다. 강력히 처벌되지 않을뿐더러 평판에 치명적인 해가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모욕에 동참하고 때로는 더 열렬히 나섬으로써 충성심을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최근 보고 있자 하니, 지독히 모욕적인 방법을 써서 사람을 단칼에 잘라내고 오만정 떨어지게 하는 것이 비단 회사에서만 아니라 한국 정치에서도 쓰이는 방법인 것 같다. 그래도 크게 욕을 먹지 않는 데다가 설득하고 합의해 온건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싸게 든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필요 없는 존재로 결정되는 순간 역시 저런 식의 모욕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상존하는 사회라는 것이 어떻게 바람직한 것이겠는가. 게다가 자존심이 심하게 상한 사람이란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러니 모욕은 비용이 적게 드는 방식도 아니다. 또한 늘 모욕을 가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도 없다. 오늘 모욕을 가한 자가 내일은 모욕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