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밤이다. 활기 넘치는 야시장, 정겨운 ‘가맥(가게 맥주)’ 집이 있어 밤이 즐겁다. 한옥마을도 은은한 달빛을 받을 때 가장 우아하다. 무엇보다 풍남문 야경이다. 해가 지면 풍남문은 아예 빛의 옷을 입고 멋을 부린다. 단언컨대 전주의 가장 화려한 야경이 여기에 있다.
빛을 입은 풍남문
연간 960만 명이 찾는다는 전주 한옥마을은 낮과 밤이 확연히 다르다. 주말 한낮에는 발 디딜 틈 없이 포화 상태인데, 밤에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한옥마을의 문화시설이 대개 오후 6시면 문을 닫아서다. 풍남문 미디어 파사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전주시 등이 6억5000만원을 투입해 약 1년간 공들인 작품이다. 여기엔 기억에 남는 밤 문화를 전주에 이식하고자 하는 바람이 얹혀 있다.
사실 랜드마크와 영상 예술의 만남은 낯설지 않다. 오페라하우스(호주 시드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미디어 파사드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한국의 덕수궁 석조전과 경복궁에서도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진 바 있다.
풍남문의 미디어 파사드 공연은 약 10분 길이로 짧은 편이다. 그러나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상이 화려해 눈이 시릴 정도다. 9세기 후백제의 수도였을 때 전주의 모습과 그래피티·비보잉 등을 그린 감각적인 영상이 현란하게 뒤섞인다.
“풍남문은 한옥마을을 오갈 때 늘 스쳐가는 장소였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성벽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요.” 풍남문 앞에서 만난 관광객 임수민(25)씨의 말마따나 달밤의 문루는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빛난다.
밤도 맛도 깊어진다
야시장은 역시 먹는 재미다. 야시장에 있는 이동 판매대 32곳 가운데 22곳에서 먹거리를 판다. 메뉴는 각양각색이다. 최고 명물은 ‘총각네스시’다.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선·후배 6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소고기불초밥(1점 900원)과 길라면(3000원)을 내는데 기다리는 줄이 줄어들 줄 모른다.
‘아짐손 불곱창갈비’에선 돼지껍데기·돼지곱창·삼겹살 등을 한데 섞은 모듬 양념구이(5000원)를 판다. 전주 서신동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던 부부가 차린 가게로 요즘도 단골손님이 다녀간다. 안주로 서너 개씩 포장해 가는 손님이 많다. ‘아이술크림’은 흑맥주 · 막걸리 같은 술을 넣은 아이스크림(3000원)을 판다. 울며 보채도 미성년자에게는 팔지 않는단다. ‘필리핀에 필꽃쳐’ ‘스마일 타일랜드’처럼 동남아 출신 이주 여성이 운영하는 판매대도 있다. 필리핀식 고기만두, 태국 쌀국수 같은 음식을 파는데 능숙한 한국말로 손님을 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술이 고플 땐 ‘가맥(가게 맥주)’이 제격이다. 가맥은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즐기던 전주 서민의 독특한 술 문화다. 잡동사니를 팔면서 술집을 겸하는 가맥 집이 전주에만 약 300곳에 달한다.
한옥마을 맞은편 경원동에 명성 자자한 ‘전일슈퍼’가 있다. 500㎖ 맥주 한 병이 2200원이다. 안주는 황태구이·계란말이(각 6000원)와 갑오징어구이(1만3000원)가 전부다. 1만400원만 있으면 맥주 두 병에 안주까지 곁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일슈퍼에서 많게는 한 달에 맥주 2만 4000병이 팔린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전국의 단일점포 중에서 부동의 매출 1위 가게란다. 26년 전통의 ‘영동슈퍼’는 안주가 남다르다. 황태구이·갑오징어구이·계란말이 외에 고추치킨(1만 3000원)·닭똥집튀김(1만원)을 낸다. 바삭바삭하고 매콤한 고추치킨은 치킨 매니어 사이에서 꽤 유명한 메뉴다. 치킨을 주문하면 닭발튀김을 서비스로 주는데 이 또한 별미다. 영동슈퍼는 맥주 한 병에 2500원을 받는다. 만원만 쥐고도 옆 사람과 주거니 받거니 한참을 마실 수 있다.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