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은 지난주 대법원이 차모(36)씨가 네이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2심이 네이버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반면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상반된 판단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유 장관은 같은 달 5일 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3일 후 대상자 ID와 인적 사항 일체를 요구하는 자료제공요청서를 네이버에 보냈다. 네이버는 이틀 뒤 차씨의 ID, 이름, 주민등록번호, e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 인적 사항을 경찰에 제공했다. 이후 경찰 조사를 받은 차씨는 고소 취하로 사건이 종결된 뒤 네이버를 상대로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아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통신자료 제공으로 범죄에 대한 신속한 대처 등 중요한 공익을 달성할 수 있음에 비해 제한되는 사익은 이용자의 인적 사항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이 두 개의 판단 사이엔 ‘인적 사항’의 중요성에 대한 시각차가 깔려 있다.
반면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경우에도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실질적 심사의무를 인정해 그 제공으로 인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사인(私人)에게 전가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법이 네이버의 공공성을 중시한 데 반해 대법원은 ‘사인’으로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업자로서는 수사기관이 형식적 절차적 요건을 갖추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할 경우 원칙적으로 이에 응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수사기관은 비밀을 엄수하도록 돼 있어 인적 사항이 수사기관에 제공됨으로 인한 사익의 침해 정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세 가지 쟁점에 대한 견해 차이가 '책임 인정' '책임 불인정'이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처럼 통신자료 제공제도가 남용되는 데는 ‘인적 사항쯤이야…’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주민번호 하나만 있으면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에서 추가적인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법원 영장도 없이 프라이버시가 까발려지는 것이다. 그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네이버 등 대형 포털을 과연 ‘사인(私人)’으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네이버는 연 매출 3조2512억 원(2015년), 직원 수 2335명(2014년)에 이르는 기업이다. 특히 3700만명이 넘는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있다. ‘공룡 포털’로 불리는 네이버의 책임을 가볍게 보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일까.
또 ‘자료 요청에 응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은 응할지, 응하지 않을지에 관한 판단을 사업자에게 맡기고 있다. 그것을 ‘원칙적으로 응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 대법원의 해석은 과도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전반적으로 인권 보장보다 수사 필요성에 치우쳐 있다.
네이버 등 포털들은 2012년 10월 서울고법 판결 직후 영장 없는 자료 제공을 중단해왔다. 향후 수사기관과의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통신자료를 계속 제공하고 있는 통신사들도 가입자들의 제공 사실 확인 요청이 쇄도하면서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 있다.
나아가 통신자료에 대해서도 영장주의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14년 4월 현행 통신자료 제공제도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가입자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 등 통신자료를 ‘통신사실확인자료’에 포함시킴으로써 법원의 허가를 받아 요청하게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시민들의 사생활 보호는 물론 국내 IT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법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구시대적인 제도는 이제 손질할 때가 됐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회피 연아’ 사건은 급박성이 크다고 볼 수 없다. 영장을 발부받아 통신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납치·유괴 등 예외적인 경우를 갖고 인권을 제한하는 근거로 삼는 건 적절치 못하다. 예외적 사건에 한해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영장주의의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