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30년 뒤 어떤 AI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동안 중앙일보에 보도된 AI 관련 기사를 토대로 30년 뒤의 세상을 그려봤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일어나세요. 오늘은 오전 9시30분 본부 회의에 직접 참석해야 합니다. 보안 문제로 화상회의는 불가합니다. 일어나세요.
눈 떴어. 고마워요.
마리오 란자의 아베마리아. 영화 '크레이트 카루소'(1951) 중.
난 서울에 본부를 둔 세계질병분석·관리 센터 소속 과학자다. 질병 정보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이 모인 우리 팀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범용AI(AGI)가 일한다. 알츠하이머와 암을 완전 정복한 연구소로 유명하다. 과거 의사들이 육안으로 긴 시간을 들여 판독했던 의료 영상 정보를 AI 덕에 수초 안에 분류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인류는 생로병사의 비밀을 대부분 해독했다.
질병의 패턴·증상 분류 등에 수작업이 필요 없어진 것은 이미 20년 전 일이다. 의사들은 진단에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 그건 인공지능이 탁월하다. 인간은 나처럼 분석 방향을 제시하거나 무엇이 시급한 과제인지를 결정한다. 인공지능과 협업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많이들 궁금해 하는데, 나와 AI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최선의 결정을 향해 나간다고 설명하는 게 가장 근접하겠다.
세계 제1차 ‘로봇윤리ㆍ인공지능 윤리 법률 제도에 관한 회의’(2020년)를 기점으로 인간과 AI의 영역이 나뉘었다. 2015년 11월 발족한 오픈AI가 축적해온 성과물이 토대가 됐다. SF 속의 문제로 여겨졌던 로봇권리헌장(1988)이나 세계미래학연맹(WFSF)의 로봇차별 금지 조항은 이제 현실이 됐다. AI가 ‘인격체’인지 논쟁은 대부분 마무리됐다. 이젠 그냥 일상이다.
사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자율주행차, 인간의 지시와 필요를 이해하고 앞서 행동하는 안드로이드가 탄생했다. 2029년 최고 난이도라고 여겨지는 인간을 웃기고 울리는 인공지능이 나왔다. 두뇌에 인공지능을 내려받기도 가능해졌다. 다만 아직은 꺼리는 인간이 있다. 21세기 초 성형수술이 그랬던 것처럼. AI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인간은 오히려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하게 됐다.
오늘은 이쯤 하겠습니다.
요즘 자꾸 ‘과학자’가 등장하네요. 좋지 않은 징후죠. 조금 더 즐거운 체험이면 좋을 텐데.
어릴 때 꿈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떠오르네요.
조금 다른 약을 처방해야겠어요.
게다가 오늘은 나도 업무일이다. 내겐 과학자가 될만한 자질이 없다. 태어나서 3번의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매번 지능과 체력 모두 기준치 미달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뇌를 사용하는 직종은 인류의 상위 0.1%에게 주어지는 기회다.
AI 선도 기업은 'AI 덕에 인류는 그 어느때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린 중세의 농노보다 풍요롭고 산업혁명기의 노동자보다 오래 산다. 나처럼 일을 하는 인간도 드문 실정이다. 90%는 직업 없이 연금을 받으며 최신 가상체험 기계 속에서 꿈을 꾸며 보낸다. 꿈만 꾸기에 100년은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이들은 만족스러워한다.
행복은 소소한 일상에 있으니까.
당초 스포츠에서도 로봇의 진출을 막았었지만 이 또한 깨진 지 오래다. 인간은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 로봇에 대한 인간의 열광이 오히려 거셌다. 현재 인간의 리그는 ‘H리그’로 보존되고 있지만 ‘A리그’의 인기에 미치지 못한다. 대신 탁월한 능력을 갖고 태어난 인간은 특별관리 대상이다. ‘S급 인간’은 AI가 더욱 진화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자산이다. 이들은 아마 AI가 우월지능(SI·Superior Intelligence)으로 발전할 발판이 될 것이다. 나머지는? 보호ㆍ관리 대상이다. 북극곰도 같은 처지다.
일터에 도착해 자리를 잡는다. 첫 손님은 피부가 유난히 맑은 여성이다. ‘인간? 로봇? 뭐, 그저 손님이지’.
하늘색 바탕에 핑크 프렌치 네일을 하면 잘 어울리시겠어요.
역시 잘 어울리시네요.
네…음악 좀 들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