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가 거닐던 옛길 사이, 오직 여기서만 만나는 작은 맛집

중앙일보

입력 2016.03.16 00:10

수정 2016.03.16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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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통신이 ‘맛있는 골목’을 찾아 나섭니다. 오래된 맛집부터 생긴 지 얼마 안 됐지만 주목받는 핫 플레이스까지 골목골목의 맛집을 해부합니다. 빼놓지 말고 꼭 가봐야 할 5곳의 맛집은 별도로 추렸습니다. 한 주가 맛있어지는 맛있는 골목, 이번 회는 개성 있는 맛집과 미술관, 윤동주 시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서촌 옥인길 맛집을 소개합니다.

[맛있는 지도] 서촌 옥인길

따뜻한 햇살이 반가운 봄입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 몸을 펴고 봄을 맞이하는 봄꽃처럼 기지개를 켜는 거리가 있습니다. 서촌 옥인길입니다.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옥인길은 서촌에서도 걷기 좋은 길로 꼽히죠. 겨우내 한산했던 옥인길은 따뜻해지는 3월부터 몰려드는 사람들로 활기를 띱니다. 연인 또는 친구, 아이의 손을 잡고 걷기 좋은 옥인길엔 소박하지만 재미있는 맛집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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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 지나 인왕산 향하는 주택가 골목
전통과 현대가 섞인 여유로운 정취가 물씬
상추튀김·단호박피자 등 독특한 메뉴 많아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다양한 맛집이 모여있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옛 금천교시장)와 통인시장이 나온다. 각종 해산물과 분식, 반찬들이 놓여있는 통인시장을 가로질러 시장 끝에 다다르면 정자(세종마루)가 보인다. 정자 건너편 편의점과 SK텔레콤 대리점 사이 골목이 옥인길의 시작이다. 사직동 주민센터에서 필운대로 쪽으로 올라오거나 반대로 자하문로에 있는 청운파출소 건너편에서 큰길을 따라 걸어 내려와도 옥인길 골목이 나온다. 경복궁역에서 9번 마을버스를 타면 옥인길 안까지 들어온다. 하지만 옥인길을 즐기려면 큰길부터 걸어서 안으로 들어오는 게 좋다. 옥인동 식당이나 가게 대부분 주차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복궁이나 광화문역 인근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와야 한다. 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 단점이지만 천천히 걸으며 옥인길 골목골목을 즐길 수 있는 건 장점이다.

 
시간이 멈춘 거리를 걷는 재미

옥인길은 서촌의 다른 골목들과 다른 분위기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옥인길은 서촌에서도 옛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길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골목에서 골목으로 미로처럼 이어진다.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가다보면 오른쪽에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터도 볼 수 있다.
 

한옥을 리모델링한 피자집 ‘옥인피자’ 입구.


 옥인길은 아직까지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1~2년 전부터 외지인의 발길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여전히 골목 집집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내와 함께 피자전문점 ‘옥인피자’를 운영하는 노민호(37)씨는 “같은 서촌이지만 길 건너 효자동은 길이 잘 정돈돼 있고 도로 간격도 넓은 편이다. 집들도 규모가 크다. 하지만 옥인길은 소형 한옥과 빌딩들이 붙어있어 사람 사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골목엔 카메라를 들고나와 추억을 남기려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옥인길에서 만난 대학생 이형은(26)씨는 “낮은 한옥, 수십 년은 돼 보이는 오래된 집들이 도심 속 높은 빌딩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시간여행을 온 것 같다”고 말했다. 4년 전 ‘남도분식’을 연 윤재욱(37)씨는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요즘엔 가만히 있어도 뒤처지는 느낌인데, 옥인길은 옛 모습이 남아있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추운 겨울 한산했던 이곳은 봄이 오면 활기를 되찾는다. 특히 봄·가을처럼 걷기 좋은 계절에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떠밀려 걸을 만큼 골목마다 사람들로 가득 찬다. 지난 8일 오후 4시에 찾은 식빵 전문점 ‘토리’의 식빵 진열대는 거의 비어 있었다. 박종관 토리 대표는 “지난해부터 경제가 안 좋다고 하는데 옥인길 경기는 그래도 괜찮다. 복 받은 동네다”고 말하며 웃었다. 옥인길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지모(52)씨는 “1년 전부터 주말이면 몰려오는 외지인들 때문에 오히려 주민들은 다른 동네로 피난 갈 정도”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대신 개성 있는 가게

서촌은 거리마다 식당과 카페들이 구석구석 들어차 있다. 하지만 옥인길은 아직 아니다. 여전히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카페가 드물다. 여의도에 본점이 있는 베이글 전문점 ‘아이엠베이글’이나 홍대 앞의 유명 와플가게 ‘림벅와플’ 정도가 다른 동네에 있는 본점의 지점이지만 이런 곳도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전문점은 아니다. 옥인길에서 2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한 셰프는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오래 버틸 수 없는 분위기다. 옥인길을 찾는 사람은 옥인길 특유의 소박한 느낌을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식당 역시 다른 곳에서 봤던 곳을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쫄면 위에 토핑을 얹어내는 ‘블란서쫄면’.


 옥인길엔 주인이 정성 들여 만든 한 그릇의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조금은 투박해 보이지만 정성껏 만든 요리는 소박한 분위기의 옥인길과 닮았다. 식당 주인 중엔 우연히 옥인길에 왔다가 이곳의 매력에 빠져 자기 가게를 연 사람들이 많다. ‘토리’ 박종관 대표는 “그냥 놀러 왔다가 옥인길 골목의 예스러운 분위기에 빠져 2년 전 가게를 열었다. 홍대 앞에서 장사할 때보다 마음이 편하고 출근길이 즐겁다”고 했다. 지난 1월 옥인길 초입에 쫄면전문점 ‘블란서쫄면’을 연 이준화씨는 “주변에 수성동계곡과 인왕산 등이 있는데 서울 도심 동네 중 이렇게 자연이 가까이 있으면서 골목 정취가 살아있는 곳이 드물다. 특히 유흥가가 없어 저녁에도 조용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지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정성 들여 만든다. 가게 규모가 10~20석 정도로 작아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이들의 요리는 옥인길의 분위기와 맞물려 소박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난다.

 
분식부터 이탈리아 식당까지

옥인길을 처음 알린 건 ‘남도분식’이다. 처음엔 옥인길 주민을 대상으로 한 그릇 한식요리를 팔았다. 이 중 튀김을 상추에 싸먹는 전라도식 상추튀김이 유명해지면서 TV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됐고 이후 가게 앞엔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맛집이 들어선 건 2014년 무렵이다. 도우 두 장 사이에 소스로 만든 토핑을 넣어 피자를 만드는 옥인피자와 막걸리 발효종을 넣어 만든 식빵전문점 토리, 이탈리아식 선술집 ‘에노테카친친’ 등 옥인길 대표 맛집으로 꼽히는 곳들이 모두 2년 전 문을 열었다. 맛집 종류는 한식부터 디저트, 이탈리안 레스토랑까지 다양하다. 천연발효종으로 구운 빵을 파는 ‘슬로우브레드에버’, 수제케이크전문점 ‘코코블랑’ 고로케전문점 ‘날라리고로케’, 수제잼·스콘 전문점 ‘제나나잼’ 등도 유명하다.
 

옥인길에 4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훈 오너셰프.


 전문성보다 정성 들여 만든 요리 위주였던 옥인길에는 최근 2년 새 ‘친친’이 들어가는 이름의 식당 4곳이 문을 열었다. 친친은 잔을 부딪칠 때 나는 소리를 뜻한다. 옥인동 건너편 효자동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까델루뽀’를 운영하는 이재훈(36) 오너셰프가 2013년 ‘에노테카친친’을 시작으로 지난해 ‘친친함박’, ‘친친원테이블’, 지난달 ‘친친보이스데이’를 열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한 이 셰프는 청담동 등 강남에서 일했다. 그러나 빨리 변하는 트렌드와 경쟁적인 분위기에 지쳐 2010년 서촌에 자리를 잡았고 더 예스러운 느낌의 옥인길까지 발길을 넓혔다. 이 셰프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와인을 마시며 즐길 수 있는 곳을 열고 싶었는데 옥인길에 와보니 골목의 예스러우면서 편안한 분위기가 잘 어울려 가게를 냈다”고 말했다. 친친함박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던 경양식집에서 먹던 함박스테이크를 파는 가게다. 친친원테이블은 기다란 원 테이블에 함께 앉아 이탈리아 단품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고, 친친보이스데이는 BBQ와 에일맥주, 칵테일 등을 파는 가게다. 식당마다 콘셉트와 메뉴가 다르다. 최근엔 옥인길에만 4개의 식당을 연 그의 이름을 따 ‘이재훈 거리’로 부르는 사람들도 생겼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옥인길을 찾는 사람들로 골목이 활기를 띄고 있다.



옥인길 대표 맛집

친친원테이블=2010년 효자동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까델루뽀’를 인수하며 서촌에만 6개의 레스토랑을 연 이재훈 오너셰프의 레스토랑이다. 18명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원 테이블에 모여 앉아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작은 레스토랑이다. 원 테이블 옆에 작은 테이블 2개와 별도의 룸도 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공수해온 가면 등 소품과 남대문 시장에서 사 온 싱싱한 꽃으로 내부를 꾸몄다. 1만~3만원대 이탈리안 요리와 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을 즐길 수 있어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점심엔 4가지 애피타이저와 리소토, 파스타로 구성된 런치코스를 판매한다. 저녁엔 단품 요리와 와인을 파는데 40종의 와인과 칵테일 등이 준비돼 있다.

○ 대표 메뉴: 런치코스(3코스) 1만9000원, 돼지통갈비구이 2만5000원, 코코넛커리크림스파게티 1만9000원
○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11시(오후 3~5시 쉬는 시간) 연중무휴
○ 전화번호: 02-370-0682
○ 주소: 종로구 옥인3길 16


남도분식=
옥인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가게가 보인다. 그곳이 남도분식이다. 낮 12시면 가게 안 대기표에 이름을 적고 기다려야 할 만큼 옥인길 대표 맛집이다. 4년 전인 2012년 문을 열었는데 전라도가 고향인 윤재욱씨가 어릴 적 튀김을 상추에 싸먹던 방식대로 만든 상추쌈을 선보이며 유명해졌다. 2년 전 선보인 떡볶이도 독특하다. 리가토니(안이 비어 있는 굵은 국수 모양의 파스타)와 모차렐라 치즈로 속을 채운 오징어를 넣어 즉석에서 끓여낸다. 조미료를 넣지 않아 뒷맛이 깔끔하고 오징어가 감칠맛을 낸다. 숯불에 구운 목살과 김밥, 파절이를 쌈에 싸 먹는 전주식 김밥쌈도 이곳에서 꼭 먹어봐야 할 메뉴다. 1000원을 내면 쌈을 추가할 수 있다. 지난해 삼청동에 2호점을 열었다.

○ 대표 메뉴: 오순떡 1만3000원, 상추튀김 6000원, 김밥쌈 7000원
○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30분(오후 3~5시 쉬는 시간), 월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723-7775
○ 주소: 종로구 옥인길 33

 

옥인피자
=옥인길 메인 도로를 유심히 보면 오른편에 빨갛게 나와 있는 작은 입간판이 눈에 띈다. 간판 속 화살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한옥에 옥인피자라고 적힌 나무 간판이 걸려있다. 2014년 결혼한 노민호·유지은 부부가 신혼집으로 마련한 한옥의 실내를 현대식으로 고쳐 피자집을 열었다. 처음엔 방 한 개를 침실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가게 전체를 피자 가게로 운영하고 있다. 메뉴는 피자와 샐러드뿐이다. 이곳의 피자는 다른 피자와 달리 도우와 도우 사이에 소스와 토핑을 듬뿍 넣어 굽는다. 노씨는 “도우의 바삭한 식감을 최대한 살리면서 토핑이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디엄 사이즈 피자에 샐러드·감자를 함께 주는 세트와 라지 사이즈 피자 중에 선택할 수 있다. 가게가 좁아 예약은 받지 않고 포장은 가능하다.

○ 대표 메뉴: 단호박치즈피자 1만9800원, 알프레도머쉬룸피자 2만2000원
○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오후 3~5시 쉬는 시간), 매주 월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737-9944
○ 주소: 종로구 옥인길 26


토리베이커리

통유리를 통해 가게 안에 진열된 빵, 오븐에서 나오는 빵, 빵 굽는 주인 박종관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홍대 앞에서 디저트 가게를 하던 박씨는 우연히 들른 서촌 옥인길의 매력에 빠져 2014년 이곳에 빵집을 열었다. 식빵 전문점답게 다양한 종류의 식빵을 파는데 모든 식빵은 막걸리 발효종을 넣어 담백하고 쫄깃할 뿐 아니라 소화가 잘된다. 오전 11시와 오후 4시 무렵 하루에 두 번씩 빵이 나온다. 기본 식빵인 막걸리식빵과 크랜베리를 풍성하게 넣은 크랜베리식빵이 가장 인기다. 식빵 외에도 스콘, 케이크, 카스텔라, 브라우니도 있다,

○ 대표 메뉴: 막걸리식빵·크림치즈 모카 4000원씩, 크랜베리식빵 4500원
○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월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3333-5771
○ 주소: 종로구 옥인길 30-3

 

슬로우 브레드 에버
=주차장 안쪽에 가게가 있어 지나치기 쉽지만 옥인길을 아는 사람들에겐 이미 유명한 빵집이다. 처음 방문해 어떤 빵을 먹을지 고민이라면 즉석에서 빵을 잘라 시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랑스산 밀가루로 만든 담백하면서 고소한 바게트와 안에 화이트 초콜릿을 넣은 화이트초코바게트, 거칠게 빻은 통밀에 호두, 밤꽃꿀을 넣어 만든 밤꿀통밀이 가장 인기다. 옥인길 건너편 통인시장 입구에 샌드위치를 전문으로 한 2호점 ‘에버 델리’(02-720-0850)도 있다.

○ 대표 메뉴: 에삐 4500원, 화이트초코바게트 3500원, 밤꿀통밀빵 5000원
○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8시(매주 월요일, 마지막 주 화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734-0850
○ 주소: 종로구 옥인길 8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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