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알파고에 사용된 것은 이미 학계에서 발표된 지 오래된 기술들이다. 바둑의 수많은 경우의 수를 무작위로 뒤져 가면서 착수점을 결정하는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 알고리즘은 10년 전부터 이미 거의 모든 인공지능 바둑 소프트웨어에서 정석으로 쓰이고 있다. 스스로 학습하는 ‘자가 대국’ 기법 또한 1992년 백개먼이라는 보드게임 알고리즘 개발 시 등장했다. 바둑판의 형세를 판단하는 것이 탐색 알고리즘 효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 부분에서 알파고는 엄청난 성능 개선을 달성했다. 최근 기계학습 연구를 온통 뒤엎고 있는 딥 뉴럴 네트워크 기술을 여기에 적용했다. 이 역시 이미지 인식 분야에서 90년대에 탄생했다. 알파고에서 쓰인 뉴럴 네트워크는 고등 동물 두뇌의 시각 피질에서 일어나는 계산을 흉내 내 이미지 내의 객체 인식에 활용하는 콘벌루셔널 뉴럴 네트워크라는 기술이다. 즉, 바둑판을 검은색과 흰색 픽셀로 이루어진 이미지로 취급해 인간이 이미지를 보고 직관적으로 객체를 인식하는 것을 바둑판에 거의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알파고는 컴퓨터의 빠른 연산 능력을 이용한 탐색 기법과 인간의 직관을 흉내 내는 딥 뉴럴 네트워크가 상호 보완적으로 동작함으로써 인간 최고 수준의 바둑 실력을 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관전 포인트와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대국을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이라고 보지 말자. 컴퓨터가 이 정도의 어려운 문제를 풀어낼 만큼 편리해지고 강력해졌다고 보면 된다. 인간이 처리하기 힘들고 고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가 탄생한 그 목적에 충실히 부합하는,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결과물이다. 예컨대 핵공학을 원자력 발전에 사용하든지 원자폭탄에 사용하든지, 인류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 방안을 세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둘째, 이번 대국 결과가 ‘인공지능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도 절대 아니다. 알파고에 탑재된 기술은 진정한 의미의 범용 인공지능이라 부르기 힘들다. 바둑이 갖는 속성에 가장 적합한 인공지능 요소 기술들을 조합해 만든, 바둑에 특화된 알고리즘이다. 예컨대 컴퓨터 체스에는 알파고의 핵심 기술인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이나 딥 뉴럴 네트워크가 사용되지 않는다. 최고 수준의 체스 실력을 보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기술이라는 게 통설이다. 알파고는 수많은 대국을 통해 이기고 지면서 학습을 수행했는데, 무인자동차나 로봇과 같이 자칫 실수할 때마다 사람이 죽거나 큰 피해를 입는다면 알파고의 학습 알고리즘을 그대로 적용하기 힘들다. 아직 인공지능의 원대한 목표까지는 길이 멀다.
셋째, 우리 후세들이 꼭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 인공지능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바둑 대결을 통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된 것처럼,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모른다면 현업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이번에 딥 마인드 연구진이 직접 작성한 알파고의 핵심 소스코드는 1000줄 남짓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는 컴퓨터 전공 학도가 며칠이면 구현할 수 있는 분량이다. 반면 인공지능 핵심 지식이 없다면 평생 작성해도 결과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김기응 KAIST 전산학부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