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미쉐린 별점의 저주’

중앙일보

입력 2016.03.14 00:19

수정 2016.03.14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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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첨탑의 도시’로 불리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1000여 개의 뾰족한 첨탑과 부둣가 인어공주상 정도가 자랑인 이 도시에 지난 5년 동안 관광객이 12%나 늘었다. 오로지 4차례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뽑힌 북유럽 식당 ‘노마’ 덕이다. 순록고기·야생이끼 등 독특한 북유럽 식재료를 쓰는 노마는 무명의 노르딕 요리를 단숨에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리하여 식도락 관광객들이 이곳에 몰리고 있는 거다.

관광에서 ‘먹는 낙’의 비중은 막대하다. 국내 외국 방문객이 가장 많이 하는 게 쇼핑(72.8%)이고 다음이 식도락(48.4%)이었다. 업무(16.5%), 유적지 관광(14.2%), 자연경관 감상(13.3%)은 비할 수 없다.

그래서 세계적 레스토랑 안내서인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편이 곧 나온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반갑다. ‘미식가의 성서’라는 미쉐린 가이드는 지역판이 나온다는 것만으로 그곳의 식문화가 수준급이라는 의미다. 지역판이 나온 파리·뉴욕·도쿄 등은 모두 미식가들의 낙원이다.

하지만 명심할 건 이게 양날의 칼이라는 거다. 어떤 분야의 나라별 수준을 가늠할 때 쓰는 지표들이 있다. 과학의 경우 ‘노벨 물리·화학상 수상자가 몇이냐’는 식이다. 식문화에서 애용되는 지표가 바로 미쉐린 가이드다. 최대 3개까지 받는 별점 레스토랑이 몇 개인가가 그 나라 음식 수준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한데 별점 식당이 가장 많은 데가 하필 이웃 도시 도쿄다. 지난해에는 226개를 기록, 파리(94)·뉴욕(73개)보다 훨씬 많았다. 서울의 별점 식당이 도쿄보다 턱없이 적으면 한식에 대한 평가가 어찌 되겠는가.

더 큰 걱정은 ‘미쉐린 별점의 저주’다. 별점 레스토랑으로 뽑히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손님들이 몰려 서비스는 물론 음식의 질까지 추락하기 십상이다. 단골들을 위해 미쉐린 별점을 반납하는 레스토랑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매스컴의 관심을 받게 되면 본업은 외면한 채 방송 등 너무 다른 곳에 한눈을 파는 스타 셰프들이 생길 수도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한 해만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별점을 계속 못 받으면 추락하는 식당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미쉐린 별점이 깎일 걸 두려워해 자살하는 스타 셰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탓이다. K팝에 이어 K푸드가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요즘이다. 미쉐린 별점의 저주로 막 뜨고 있는 우리의 음식문화가 뜻밖의 치명상을 입을까 두렵다.

남정호 논설위원